<2007-05-01 격주간 제651호>
<時論> 싱그러운 새잎과 PC방 부엉이들

<진복희 시인>

다투어 피던 꽃들이 지기가 무섭게 수수꽃다리 향내가 온 동네를 아련하게 감싸고 돈다. 다른 달은 다 제쳐 둔 채 유독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꼽는 까닭을 알 듯도 싶다.
어디 눈부신 신록뿐이겠는가? 계절의 여왕답게 좋은 날은 다 거느리고 있는 5월.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모두 정답게 모여 있는 달이 5월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그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인간 관계의 기본이 다 들어 있는 달인 까닭이다. 부모를, 스승을, 나를 오롯하게 돌아보는 달인 까닭이다.
그 중에도 이제 막 싹터 오는 ‘새잎’ 같은 어린이의 모습은 싱그러운 5월과 너무도 닮았다. 그런 연유로, 어린이·청소년을 5월의 으뜸 주인공으로 내세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주인공이기를 포기한 아이들도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게 있다. 한두 집 걸러 버티고 앉은 PC방 아이들이 그들이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딱정벌레처럼 붙어 앉아 좀체 일어설 줄을 모른다. 생각을 아예 닫고, 꿈마저 닫고, 기계의 부품처럼 작동하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흡사 ‘밤부엉이’ 같다.
내가 곧잘 찾아가는 PC방 풍경은 늘 한결같다. 걸핏하면 심통을 부리는 내 컴퓨터 때문에 가끔씩 신세를 지러 가는 곳이다. 담배 연기 뿌연 동굴 속, 명멸하는 화면, 자글거리는 자판 소리, 어둔 동굴 속에서 눈빛만 번들대는 ‘부엉이’들이 방 가득 빼곡히 박혀 있는 PC방. 어느 동네 PC방이든 이런 형편은 대체로 엇비슷하다.
그 부엉이들 틈을 간신히 비집고 일을 끝낸 뒤 쫓기듯 그곳을 벗어나면 밖은 너무너무 화창하다. 음지와 양지, 그 극명한 명암의 대비에 내리쬐는 햇빛이 무색할 지경으로 가슴이 답답해 온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밖으로 튕겨져 나온 탓만은 아닐 것이다. 저 어린 ‘부엉이’들이 내내 뒷덜미를 잡은 채 한사코 날 놓아 주질 않는 것이다.
이런 세태가 우리만의 것은 아닌가 보다. 얼마 전 들른 책방 서가는 5월을 맞아 쏟아져 나온 책들로 풍성했다. ‘나는 진짜 소중해!’, 외국 작가가 쓴 이 어린이 그림책을 먼저 집어든 것은 다분히 그 그림책 제목에 선뜻 끌렸기 때문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기적’인 풍조가 대세를 이루는 요즘, 뭔가 시사점을 던지는 그 제목이 금세 마음에 닿아 왔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마침내 뿌리 깊은 나무가 된다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굳은 의지와 참다운 용기를 지니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정말 적확한 지적이었지만, 너무나 평이해서 자칫 흘려버릴 수 있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새삼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어느 때부터인가 ‘자애’하는 마음을 까마득히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기심’과 ‘자애’를 우리는 혼동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어린이는 여린 싹이다. 풋풋한 새싹이다. 그것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어여쁜 새잎이다. 그 새잎들을 양지로 양지로 불러내어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흙을 북돋우어 주어서 마침내 제 스스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우리 모두 볼 수 있는 날을 고대해 본다.
새잎을 떠올릴 때마다 겹쳐지는 그림이 하나 있다. 번잡한 도심을 벗어날 때면 곧잘 눈에 띄던 표석, 호젓한 마을 입구를 지키던 그 돌 위엔 ‘새잎’ 같은 네잎 클로버가 새져져 있었다. 잎마다 4-H정신의 깊은 뜻이 담긴 클로버였다.
신록의 철이 될 때마다 자연스레 클로버 ‘새잎’이 떠오르는 것은, 무한한 생명의 찬가를 터뜨리는 신록과 인본사상을 그 바탕에 깔고 있는 4-H정신의 맥이 한 가지로 통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4-H운동이 방방곡곡, 날로 달로 넓고 깊게 그 뿌리를 뻗어 가는 모습을 그려 보는 일은 생각만도 즐겁다. 다시 싱그러운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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