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5 격주간 제829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시집가는 딸에게 주는 편지

"책을 읽으면 부자가 된다
貧者因書富(빈자인서부)
- 《고문진보(古文眞寶)》 중에서"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성인식인 관례(冠禮), 결혼식인 혼례(婚禮), 장례를 치르는 상례(喪禮), 제사를 지내는 제례(祭禮)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 중에서 관례(冠禮)는 이제 일상에서 거의 사라진 상태이고 제례(祭禮)도 복잡한 절차와 형식이 간소화되거나 아예 가족들의 식사 자리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한 가운데 결혼과 장례는 여전히 중요한 행사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예전과는 그 형식과 절차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매우 중요한 행사라는 위치를 잃지는 않고 있다.
자식의 결혼과 부모의 장례는 나를 중심에 두고 벌어지는 새로운 만남과 안타까운 이별이라는 두 가지의 중요한 코드를 지니고 있다.
특히 결혼은 그 의미가 더욱 중요해졌다. 결혼을 통해 성인(成人)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늘의 결혼식은 혼례(婚禮)인 동시에 관례(冠禮)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예학(禮學)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 밑에서 공부를 시작한 송시열(宋時烈)은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3천 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학자이자 정치가였다.
그렇기에 송자(宋子)로 불리기도 했다. 예송논쟁(禮訟論爭) 등으로 인해 정치싸움에 몰입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그는 83세의 나이에 사약을 마시고 영욕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했다.
예송논쟁(禮訟論爭)을 주도할 정도로 예학(禮學)의 전문가였던 송시열이지만 딸을 시집보낼 때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손수 편지를 써서 챙겨주는 자상함을 보였다. ‘시집가서 잘 살아라’는 바람이 담겨 있는 이 편지를 ‘계녀서(戒女書)’라고 부른다. 총 20개 항목으로 구성된 ‘계녀서’에는 윤리와 예절 등을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소소한 살림살이를 비롯해 돈과 관련된 현실적인 충고도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재산이 아무리 많더라도 반드시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므로 살림살이는 낭비를 줄이고 사치스럽지 않고 소박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소박한 밥상이라 하더라도 정성이 가득한 밥상이 되어야 하며, 검소한 옷차림이라 하더라도 맵시가 좋도록 해야 한다. 아내는 밖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 솜씨는 그대로 드러난다. 손님이 왔을 때의 음식상과 남편이 외출할 때의 옷차림을 보면 그 집안의 아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돈이 많거나 적은 것과는 다른 문제다.”
“돈을 빌렸다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 다시 빌리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갚은 후에 다시 빌리는 절차를 밟는 게 좋다. 가장 좋은 것은 빌리지 않는 것이다. 남의 것을 빌리지 않고 어떻게든 견뎌내는 자세를 먼저 갖추는 게 좋다.”
“물건을 살 때에는 ‘만약 내가 이 물건을 판다면 얼마를 받고 팔아야 할까?’를 먼저 생각해보고, 물건을 팔 때에는 ‘만약 내가 이 물건을 산다면 얼마를 주고 싶을까?’를 먼저 생각해보는 게 좋다. 상대방의 절박한 사정을 이용하여 무리하게 싸게 사려고 한다거나 너무 무리하게 비싼 값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절박한 상황이라면 더욱 후하게 값을 치르거나 더욱 저렴하게 값을 받아야 한다.”
중국의 시문(詩文)를 모아놓은 책 ‘고문진보(古文眞寶)’를 보면 왕안석(王安石)의 시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난한 사람이 책을 읽으면 부자가 되고, 부자가 책을 읽으면 고귀한 사람이 된다(貧者因書富 富者因書貴).” 방점은 어디에 찍혀 있는가. ‘부자’를 넘어서 ‘고귀한 사람’에 찍혀 있다. 만약 필자가 시집가는 딸에게 편지를 쓴다면 이 문장을 사용하고 싶다. 송시열이 시집가는 딸에게 ‘잘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준 편지에서 말하는 ‘잘 산다’의 의미도 부자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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