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15 격주간 제648호>
<독자투고> 형님! 저는 선생님 중 선생님이오

곽인식 (경기도 광주군4-H연합회 초대회장)

1950년대 내가 농업고등학교 재학 중 약 30호가 사는 우리 마을에 ‘문화4-H구락부’(그 당시에는 구락부로 칭했음)가 조직되어 이듬해 2대 회장이 되었다. 우리 집은 방이 4개가 있어 건넌방에 일찍 남편을 잃고 5일장을 보아 3남매를 키우시는 미망인이 월세 없이 살게 되었다.

경기도4-H경진대회서 웅변 1등

그 중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4-H회원으로 가입했다. (당시는 만 10세부터 20세까지 4-H회원임) 한집에 살고 있으니 나는 회장으로서 그에게 아낌없는 지도를 했다. 학교에서 웅변대회가 있으면 웅변원고를 써서 직접 지도해 출전을 시켰다. 그리고 회의법을 철저하게 개인지도를 했다.
1960년에 내가 군에 입대하여 서로 편지가 오고 갔는데 “형님! 나 이젠 형님의 원고 없이도 내가 직접 원고를 써서 경기도 웅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어!”라고 자랑할 만한 자랑을 했다.
군경진대회시 웅변대회에서 1등한 그를 나는 인근 마을에 4-H가 조직될 때 같이 가서 웅변을 시켰었다. 그 결과 도대회에서도 최우수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홀어머니께서는 그를 대학에 진학시키지 못하고 농업고등학교만을 졸업하게 해야만 했다.
1970년대 초등학교 교사가 부족해 사범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특별전형으로 선발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그는 이 시험에 응시해 지금도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음악에도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여름, 겨울 방학이나 시간이 있으면 꼭 우리 집을 방문한다. “형님! 나는 4-H와 형님 때문에 교직원 회의에서는 내가 회의를 진두지휘하고, 회의법을 강의하는 선생님 중의 선생님이요!”하고 자랑을 한다.
여름방학 기간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교사들의 특별교육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강사로 오신 한 교수님이 강의를 끝내고 “자기가 강단에 나와 1시간 자기의 삶에 대해 강의할 분이 있으면 손을 드세요”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번쩍 손을 들고 사방을 둘러보니 손을 든 사람이 자기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1시간 동안 500여명의 선생님들에게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는 어렸을 적 4-H경진대회 웅변대회에 나간 이야기며, 안집 형님의 개인지도로 회의법을 배우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학부모들에게도 자녀들에게 회의진행법을 교육시키는 것이 꼭 필요해 과외지도를 하니 양해해 달라고 해 호응을 얻은 사실도 말했다.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해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음악석사학위도 받았노라고 인생 성공담을 고백했다.
이렇게 오전 교육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500여명이 줄을 서서 배식 차례를 기다리는 식당으로 가자 많은 선생님들이 “유선생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가시지요”하면서 영웅 대접을 하더라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4-H회원 될 것

“형님! 나는 4-H회에서 훌륭한 리더십을 배워 어느 단체에 가서나 두각을 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때 4-H회원이 된 것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다시 태어나도 4-H회원이 될 겁니다.”
그의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나도 자네와 똑같은 마음이네!’하는 말을 했다. “형님! 4-H로 이끌어준 형님을 늘 존경합니다”라고 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뿌듯한 마음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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