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5 격주간 제883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주자가 황제에게 올린 편지

“죽을 각오로 두 번 절한 후 글을 올립니다”
昧死再拜(매사재배)
- 《무신봉사(戊申封事)》 중에서


1188년, 주자는 당시 황제의 자리에 있던 효종(孝宗)에게 글을 올린다. 주자의 나이 59세, 지금으로부터 830년 전의 일이다. 이 글을 ‘무신봉사(戊申封事)’라고 하는데, 무신년(戊申年)에 올린 글을 뜻한다. 중대사를 보고하면서 소문이 날까 두려워 검은 주머니에 밀봉하여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봉사(封事)’라고 한다.
당시 송나라는 안정과 평화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효종은 불필요한 관리의 숫자를 줄이고,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해 송나라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자는 평화의 시대에 군이 부패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군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주자는 편지의 첫머리에 “죽을 각오로 두 번 절한 후 글을 올립니다(昧死再拜)”라고 쓰고 있다. 주자가 830년 전에 쓴 글을 거울로 삼아 오늘의 우리를 비춰보자.
“부정부패를 일삼는 사람들은 군대를 담당하는 장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예전에 이에 대해 말씀드렸을 때, 임금께서는 눈을 부릅뜨고 잘 살펴서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아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궁궐을 수비하는 장수들의 자리를 교체하게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이제 더 이상 그런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궁궐 수비를 담당하던 장수는 쫓겨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자리로 이동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내린 게 아니라 오히려 상을 주신 것이 아닙니까. 일을 이렇게 처리하시면 앞으로 그들을 어찌 감당하시려는 것입니까. 죄를 짓고도 당당할 것이며 부끄러움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부정부패는 계속 이어질 것이며 오히려 더욱 그 범위가 넓어질 것입니다. 부정부패를 뿌리 뽑기는커녕 더 장려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군대의 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백성들이 피와 땀으로 낸 세금이 진정 군사력 강화에 쓰인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변방의 군사들이 어찌 생활하는 지 아십니까. 그들은 군사훈련을 하는 것보다 땔감을 구해오고 짚으로 신발을 만드는 일에 매달리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굶주림에 지쳐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세금은 어디로 다 사라졌습니까. 군사들의 의식주에 사용하라고 내려준 세금이 엉뚱한 곳으로 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훈련이라고 해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이런 때에 오랑캐들이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이 모두가 부정부패 때문입니다. 병사들을 지휘하고 보살피며 훈련시키라고 보낸 장수들이 자기 배만 채우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한 것이라며 백성들을 위협하여 과도한 세금을 거둬가고 그것으로 병사들을 먹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만 채웁니다. 거짓으로 병사들의 수를 부풀려 더 많은 세금을 거두고 그것으로 자신의 창고를 채웁니다. 임금의 측근들에게 뇌물을 주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감추게 하고, 더 나아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오히려 높은 자리에 오르고 상을 받습니다. 바르고 곧은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쫓아냅니다.
이 모두가 부정부패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부정적으로 모은 재물의 일부를 임금에게 선물로 바칩니다. ‘내려주신 세금을 절약하여 남긴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며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또 칭찬을 받습니다. 임금께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군(軍)은 관(官)이 아니라 민(民)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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