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1 격주간 제858호>
[시 론]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일상의 그림

"외롭지 않기 위해 반려동물에 집착하고 있는 이 현상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인간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뜻일 게다"

박 영 택 (경기대학교 교수 / 미술평론가)

박형진은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한 하루의 일과를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는 화가다. 상큼하고 감각적이며 앙증맞게 간추려 그려낸 형태는 만화 같고 삽화와 유사하다. 사람과 개는 실제성에서 많이 벗어나있고 그것들의 크기는 다분히 왜곡되고 역전된다. 입가에 웃음을 거느리게 하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키우며 더없이 맑고 예쁜 이미지들이 귀엽게 출현한다. 화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소녀나 개의 형상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잎사귀와 새싹, 사과 등이 중심부를 가득 채웠다. 모든 게 단순하게 간략하게 추려지고 몇 가지 원색만이 시원하고 대담하게 칠해져있다. 그림은 인간과 자연, 생명체 간의 교감을 여러 정황적인 풍경으로 보여준다.
작가가 그려내는 장면은 일상에서 자신의 반려견 그리고 식물성의 생명체들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더 나아가 그것들을 진정으로 자신과 대등한 존재로 여기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밀려나온 행복에 대한 희망, 꿈에 관한 것들이다. 작가는 인간이 아닌, 인간의 몸과 언어를 지니지 못한 것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삶의 소소한 경험, 꿈, 기억을 인상적으로 가꾸어낸다. 나는 그런 마음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박형진의 그림은 인간과 인간의 타자이지만 동시에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존재들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그 생명체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동화처럼, 그림책처럼 기술해나가고 그려나간다.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보낸 하루의 동선이고 그 일상의 기록이자 그런 과정에서 터득한, 깨달은 자신과 그것들 간의 관계 맺기에 대한 절절한 인간은 어떻게 동물, 식물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박형진은 자신의 자연공간에서의 일상에서에서 반려동물과 보낸 시간, 경험, 자신의 몸이 보고 느낀 세계의 현상을 그림으로 그린다. 그것이 이 작가의 작업이다. 이 행위를 규정짓는 특정한 목적이나 의미는 무의미하다. 오로지 몸이 살아있는 동안 세계를 접촉하고 그로부터 생각거리가 발생하고 자신의 지각이 작동한다. 그것을 온전히, 솔직히 드러내는 일이 그림 그리는 일이고 쓰는 일이다. 자연에 거주하면서 개와 고양이 몇 마리와 삶을 보내는 작가는 자신이 사랑하는 생명체들과의 일상에서 접한 그 모든 것들을 편하게 그려내고 귀엽고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 가슴에 남아 가라앉는 것들, 모두 다 사라지지만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의 지각에 다가와 박힌 보석 같은 것들을 다시 기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근대에 들어와 개는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서 인간의 파트너로서 사랑을 받는 애완동물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사적인 영역에서 개를 기르는 사람들은 기술 중심적 노동 세계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수단으로써 현대 사회의 커다란 특징이다. 생동감과 자발성을 지닌 동물을 친밀한 대화 파트너로 삼고자 한다. 이는 현대의 기술 중심적 노동 세계가 익명성을 지닌 채 생동감을 상실하고 오로지 짜인 계획에 따라 무미건조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벗어나려는 욕망이 표현된 것이다.
인간이 현대 사회의 소외 조건들로 인하여 갈수록 고립되어 외로운 처지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 개는 애완동물이자 자녀의 대용물로 격상되고 있으며, 그 붙임성 덕분에 인간의 일상생활에 활기를 넣어주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인간 상호간의 관계가 갈수록 계산된 목적성을 띠면서 냉랭한 소외감을 드러내는 시대에 처한 우리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율적이고 인간적인 접촉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 상호간에 그와 같은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애완동물을 점점 더 찾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배신당하고 굴곡 심한 감정으로 인해 사람과의 관계가 두려워질 때 개는 그 빈틈으로 파고 들어와 대체된다.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여러 작업을 접하고 있는데 이는 단지 친근하고 일상적인 소재로서 묘사하기 보다는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고 그런 삶이 이전과는 무척 다른 문화를 양태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최근 인구동향자료를 보면 반려인의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족구성원이 적어서 반려 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결혼이나 가족관계를 맺는 대신에 동물과 사는 삶을 적극 선택하고 있음을 자주 접한다.
인간과 동물이 특별한 인연,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오늘날 도시인의 상당수가 이전과는 다른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반려동물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외로움을 극복하거나 상처를 치유하는가 하면 나름의 행복을 도모하는 일의 강도가 무척 세졌다는 점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불특정 다수와의 피로감 높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을 대신해 그 자리를 반려동물로 대체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무한경쟁사회로 초래된 인간간의 피로감, 굴곡 심한 감정의 교류와 왜곡되고 피곤한 소통으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인간에 대해 여러 환멸을 지닌 사람들이 인간 대신 차라리 언어적, 문자적 소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반려동물을 사랑과 애정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정황의 방증이다. 인간과의 매우 까다롭고 성가시며 공을 들여야 하는 감정적, 언어적, 육체적 관계에 절망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나머지 상처받지 않는 반려견과의 관계를 선택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인간에서 벗어나거나 스스로가 타자화 되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사실 반려동물들은 인간(주인)과의 관계에서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이고 결코 배반하지 않으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투사한다. 이는 인간의 삶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인간과 개를 동질의 것으로 환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삶보다는 인간과 반려동물의 삶이 늘어나고 있거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려동물들은 인간이 안기는 상처와 배신, 치욕 대신 즐거움과 위안을 준다. 물론 그만큼 배려와 돌봄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저마다 행복하게 살고 싶고 외롭지 않기 위해 반려동물에 집착하고 있는 이 현상은 결국 그만큼 현대인들이 인간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박형진의 그림은 반려견을 키우고 사랑하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출발해 보편적인 사회현상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귀여운 강아지가 가족의 일원이 되어 고독과 외로움, 상처를 치유해주면서 삶에 커다란 낙이 되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현상을 시각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반려견은 분명 마음에 안정을 주는 좋은 친구이자 귀여운 애완의 대상이다. 그만큼 현대 사회, 우리 삶에서 그 반려견이 차지하는 역할과 의미는 무척 크다고 본다. 작가는 그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동시에 또한 의인화하고 희화화된 개의 형상 안에 잠긴 인간의 부조리와 욕망 또한 은연중 발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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