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5 격주간 제851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봄은 보라고 온다

눈부신 노랑이 천지에 새봄을 만들고 있었다.

꽃놀이 가기도 미안한 봄날, 세월호가 목포 신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여의도 벚꽃을 보러 갔다. 아름드리나무에서 화려하게 피어나 하늘을 가리는 꽃숭어리들, 거리엔 그 아름다움을 보려고 몰려온 인파가 물결치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봄볕 쏟아지는 길가에 앉아 사람 구경을 했다. 일본사람, 중국사람, 차도르 쓴 사람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강물처럼 섞여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저만치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아까부터 몰입해 있는 여자가 보였다. 그녀의 뒷모습은 친구와 닮아있었다.
내 친구는 사진에 미쳐 봄이면 야생화를 찾아 방방곡곡 어디든 달려가는 친구였다. 그녀를 따라 딱 한 번 눈 덮인 산에 간 적이 있었다. 친구는 용케도 눈 속에서 야생화를 찾아내었고, 사진을 찍느라 몇 시간이고 눈밭에 엎드려 있었다. 꽃이 작아 엎드려야 눈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복수초를 알았고 꽃이 맨몸으로 얼음을 뚫고 올라오는 기적을 보았다. 꽃은 하얀 눈 위에 노란 꽃잎만을 겨우 내놓고 있었는데 손바닥으로 주변의 눈을 살살 쓸어내니 가늘고 여린 줄기가 나왔다. 그런데 줄기가 올라온 바닥이 동그랗게 녹아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줄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그렇게 온몸으로 겨울을 몰아내고 있던 작은 꽃!
세상을 변하게 하는 꽃은 아름드리나무에서 피는 화려한 벚꽃이 아니었다. 외로운 산속에 뿌리를 내리고 눈을 헤치며 올라오던 복수초였다. 땀방울을 닦으며 나를 보고 웃어주던 작고 여린 꽃! 그런 꽃들이 있어 이 땅에 특별한 봄이 온다.
복수초를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었다. 지난 3월 이름이 좋아 무조건 배를 타고 찾아간 섬 풍도! 그 섬은 60가구 남짓 사는 작은 섬이었다. 섬의 뒷산 기슭으로 올라가니 마을이 바닷물 가운데 둥실 떠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뜻밖에도 복수초를 만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섬은 야생화로 유명한 섬이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무릎을 꿇거나 꽃 앞에 엎드려 있었다. 사진을 찍느라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많이 핀 복수초 꽃은 처음 보았다. 한두 송이도 귀한데 무더기로 피어있었다. 눈부신 노랑이 빛을 뿜어내며 천지에 새 봄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몰래 한 무더기 꽃 앞에 주저앉았다. 복수초는 춥고 어두운 바다를 헤엄쳐 섬으로 올라온 아이들이었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던 아이들이 옹기종기 여기에 모여 앉아있었다.
바다와 바다는 통해 있으니 어딘들 오지 못하겠는가. 나는 손가락 끝을 노란 꽃잎에 살며시 대어보았다. 온기가 있었다. 아이들은 고갯짓을 하며 밝게 웃었다. 마치 나를 위로하려는 듯. 귀를 기울이자 아이들이 속삭였다. 겨울이 가서 봄이 오는 게 아니고 봄이 와서 겨울이 가는 거라고!
나는 여의도 벚나무 아래 앉아서 노란 아이들을 생각했다. 이제 세월호도 3년 만에 바닥을 치고 육지로 올라왔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손에 촛불을 들었던 혹독한 겨울도 지나가고 있다. 봄은 보라고 온다. 자신이 얼마나 새롭게 변했는지 보라고 새봄은 온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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