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01 격주간 제647호>
<4-H인을 찾아> “나는 어렵게 농업 지키는 이들의 결속 다짐이”

김 소 영 회장 (전북 임실군4-H연맹)

“그 분은 어떠한 일을 하든 묵묵히 일로서 대답할 타입입니다. 또 일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구차이 부탁하거나 시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태승 전라북도4-H후원회 사무국장이 바라본 김소영 회장의 모습이다. 하 국장의 김 회장 자랑에 신이 난 것으로 보아 주위의 신망이 매우 두터움을 직감할 수 있었다.

4-H가 나에게는 신천지

김소영 회장(52·임실군4-H연맹 회장, 전라북도4-H연맹 부회장)이 4-H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6년 전, 그러니까 1971년의 일이다. 주위의 권고로 비록 4-H가 무엇인지 모르고 참여한 그였지만 4-H활동은 그에게 새로운 신천지였고 가능성을 깨닫게 해준 조직이었다.
현역4-H회원 시절, 지도소 담당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그에겐 커다란 힘이 되었고 약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주어진 일은 반드시 실천해 나갔고 일에 부딪치면 무섭게 극복해 나갔다. 그 결과 72년 신평면 여부회장 시절에는 4-H경진대회에 참가하여 과제이수와 봉사활동으로 도내 1,2위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74년에는 군 여부회장직을 맡아 도내에서 가장 앞서가는 4-H회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를 하였다.
김 회장의 업무 스타일은 현역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4-H활동을 하면서 배운 그대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해 나가며 활동을 마치면 반드시 평가활동을 하고 있다. “군 여부회장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트랙터는 없었고 경운기가 처음으로 보급되던 시절이었지요. 그때 4-H회원들의 경운기 교육이 있었는데 한 남자회원이 지도교관의 허락 없이 경운기를 운행하다 그만 골자기에 처넣고 말았습니다. 경험이 없어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제가 들어가 기어를 넣고 경운기를 골짜기에서 끌어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해 냈는지 모르겠습니다”라며 회원시절의 한 일화를 소개한다.

<김소영회장이 수원과 서울에서 임실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이 일 또한 매사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대담하게 처리해 나가는 김 회장의 일단의 성격을 보여 주고 있다.
생활인으로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김 회장, 남자들도 힘들어 하는 임실군4-H연맹 회장을 맡아 차질 없이 업무도 챙기고 있다. 군연맹 월례회의를 주재하고 현역4-H회원들의 회의 및 교육과 행사에도 꼭 참여하여 격려와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2003년에서 2006년까지는 임실군4-H연맹 회원 가족대회를 개최하였고 2004년부터 3년간은 임실, 순창, 남원군4-H연맹 회원대회를 개최하여 회원들의 사기와 긍지를 높이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활동회원도 배 가까이 늘었다. 임실군4-H연맹 창립 초기 회원은 90명이었으나 지금은 약 15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김 회장은 남다른 기지를 발휘하여 지역사회 농가의 소득보전과 향상을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연맹 내에 유통사업부를 조직하여 서울(노원구)과 수원(권선구) 등지에서 농산물 직판행사를 가져 총 24종 3억여원의 임실군 농특산물 판매실적을 올렸다. 이와 관련 군과 도에서도 총 1500만원의 농특산물 특판 포장지 제작비를 지원, 김 회장의 활동을 돕기도 했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김 회장, 가난과 보릿고개를 몸소 체험한 그였기에 식량의 소중함과 4-H회원을 양성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잘 알고 있는 김 회장, 회장으로서 일단의 심경을 피력한다.

후배양상에 힘 보탤터

“저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어려운 농업 여건 속에서도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4-H인들의 결속을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촌을 이끌어갈 지도자는 바로 우리 4-H인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생각과 국제적인 식견을 가진 능력있는 후배 4-H회원들을 양성하는 일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4-H와 4-H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 회장은 계속해서 어려운 우리 농업의 회생 방안을 내놓았다.
“오늘날 농업이 사회적으로 경시되고 시장경제체제에서 소외되고는 있지만 고품질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여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면 우리의 농업은 반드시 회생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에 앞서 4-H인 스스로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데 앞장서 나가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대소사를 막론하고 매사에 겸손하고 적극적이며 공사의 구별이 뚜렷한 김 회장, 자녀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놓고서 이제야 늦은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2005년에는 중학교 검정고시를, 2006년에는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지금은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공부를 하겠다는 꿈은 부군과 결혼하면서 맺은 무언의 약속이다. 부군도 김 회장의 일이라면 매사를 적극적으로 밀어준다.
“오늘의 임실군4-H연맹은 직전회장이었던 김학주 회장님과 모든 회원들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저는 능력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적지만 좋은 것을 더욱 좋게 하자는 4-H 슬로건을 거울로 삼아 회장단과 회원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라며 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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