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15 격주간 제644호>
<이규섭의 생태기행> 살아 천년, 죽어서도 천년

태백산 주목

<남성미를 뽐내는 주목이 눈꽃을 이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밝은 민족(白民)’인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내는 산을 ‘밝은 산(白山)’이라 했고, 밝은 산 가운데서도 가장 ‘큰 밝은 산’이 강원도 태백산(太白山)이다. 정상에 쌓은 천제단에서는 요즘도 해마다 개천절이면 천제(天祭)를 지낸다.
한반도의 등마루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한 태백산에 해맞이 산행을 겸해 주목(朱木)을 만나려 나섰다. 유일사 입구 매표소 부근에는 영하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에서 몰려든 산행 인파로 붐빈다.
랜턴에 반사되는 눈 보다 뽀드득뽀드득 발바닥에 느껴지는 눈의 감촉이 신선하다. 쉼터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숨을 고른 뒤 50분 정도 오르니 장군봉(해발 1568m)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구름에 가려 붉게 떠오르는 해맞이를 제대로 못해 아쉽다. 여명이 밝아 오자 겨울 산이 속살을 드러낸다. 겨울나무가 피워낸 눈꽃이 순백의 그리움으로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장군봉에서 천제단에 이르는 50m 구간이 주목과 철쭉의 군락지다. ‘살아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는 주목(朱木)이 솜사탕만한 눈을 이고 서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꽃은 폭죽처럼 흩어진다. 맨살을 드러낸 고사목도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장승처럼 버티고 있다. 화려함을 뽐내며 분홍 융단을 깔았던 철쭉도 잎이진 가지에 눈부신 눈꽃을 피웠다. 햇살에 녹은 눈꽃은 얼음꽃으로 변하고 안개에 덮여 서리꽃으로 진화하며 겨울 산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장군봉에서 천재단에 이르는 길목은 주목의 군락지다.>
나무의 껍질이 붉은 주목은 동북아시아지역 해발 1,000m 이상 고지대에 서식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태백산과 소백산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태백산에는 3900여 그루의 주목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상록침엽수인 주목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평균 수령은 약 200년 정도 된다.
태백산 주목은 거목이 많다. 나무중간에 커다랗게 구멍이 패어져 있는 나무도 있고, 어떤 나무에는 썩은 밑동이 무너지지 않게 시멘트로 발라놓았다. 주목은 고사목이 되어서도 일반나무처럼 쉬 썩지 않고 수피(樹皮)가 떨어져 나간 채 풍상을 꿋꿋하게 견뎌내 ‘죽어서도 천년’이란 말을 듣는다. 일련번호 7-7-1-1의 주목은 높이가 16m로 500년이 넘는다고 한다. 몸집이 크고 우람하여 늠름한 남성미를 뽐낸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추위 속에 차례를 기다린다.
주목이 주목(注目)받는 것은 성장속도가 느리고 병충해에 강해 관상수로 각광받고 있을 뿐 아니라 예부터 이뇨, 혈당강하 등 약용으로 민간에서 사용됐다. 미국 연구진은 주목씨눈에서 항암물질인 택솔을 추출했고, 한국 기술진은 세계 최초로 택솔 대량생산 기술을 개발했다.
태백산은 철따라 야생화와 고산식물, 곤충 등 생태계를 간직한 곳으로 강원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몇 년 전부터 국립공원으로 승격하려 했으나 지역주민들의 찬·반 의견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산 길은 당골쪽이다. 단종의 원혼이 떠돌다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고 믿어 세운 단종비각을 거쳐 망경사로 내려간다. 비닐 푸대를 준비해와 엉덩이 썰매를 타고 가는 모습은 바라만 보아도 신바람이 절로 인다. 당골광장에서는 해마다 태백산 눈 축제가 열려 눈과 얼음으로 빚은 조각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올해는 1월20일부터 9일간 열린다. 당골광장 옆에 있는 태백석탄박물관에서는 석탄산업의 과거와 미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규섭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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