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01 월간 제725호>
<특별 기고> 현대 농업·농촌의 가치와 비전 ③

김 성 수
(한국4-H본부 부설 농촌청소년문화연구소장 
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농업의 다원적 기능

농업은 식량과 원료를 생산하는 본연의 기능이외에 환경보전, 식량안보, 농촌의 활력 증진 등의 다원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다원적 기능들은 대부분 비시장재화들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인식되지 못하거나 아주 낮게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통상협력에서 다원적 기능이 중요한 협상주제로 부각됨에 따라 국내 농업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일반인들의 농업의 비교역적, 비경제적 가치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번호에서는 식량의 다원적 기능 중 식량안보, 환경보전의 기능을 살펴보자.

[식량 안보 기능]

세계식량기구(FAO)의 정의에 따르면, 식량안보란 충분한 수량과 만족할 만한 품질의 식량을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장소에서 입수 가능하고 소비할 수 있으며, 또한 이러한 상태를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식량안보 기능이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해당하는가 여부가 논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논점의 핵심은 식량안보를 자급으로 보느냐 아니면 자조로 보느냐다. 자조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생산과 분배를 최적화하여 식량안보를 달성하고자 하는 입장으로 시장개방 및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농산물수출국들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다. 반면 자급을 통한 식량안보 달성은 개별 국가들이 적어도 주곡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식량자급도를 유지하여 여건변화로 발생할 수 있는 식량위기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식량수입국들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두 입장 중에서 자급에 의한 식량안보는 다원적 기능의 대상이 되지만, 자조를 통한 식량안보는 다원적 기능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자조에 의한 식량안보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식량안보를 목적으로 국내 생산을 확대하는 것은 식량공급원의 다원화를 억제함으로써 식량위기의 가능성을 높이고 구조개선에 의한 생산성 향상을 지연시킴으로써 식량의 지속가능한 공급체계 수립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조를 통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입장은 수입국이 식량을 필요로 할 때 항상 구입할 수 있으며 그것도 안정된 가격수준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가정이 전제된 상태 하에서만 가능한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지 않다. 자조를 통한 식량안보 도달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세계곡물시장의 불안정성에 있다.
먼저 세계곡물시장의 현황을 보면, 주요곡물에 해당하는 밀과 옥수수의 가격은 90년대를 제외하고는 20세기 동안에 조금씩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곡물가격이 거의 주기적으로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데 있다. 우리의 주곡인 쌀의 경우에도 1980년 냉해로 인한 수확량 감소로 국제시장에서 쌀을 수입할 때 평소가격의 3배 수준으로 국제 쌀가격이 폭등했다.
이처럼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세계곡물시장의 불안정성이 현실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급에 의한 식량안보가 필요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세계곡물시장에서 곡물수출국 및 곡물메이저들의 과점적 위치에 기인한 곡물무역의 과점화가 시장 및 가격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 세계식량기구(FAO)의 자료에 따르면, 191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세계시장에서 밀의 수출은 미국, 캐나다, 호주 및 아르헨티나의 수출이 전체의 70% 이상을 점하고 있다. 그리고 다국적 기업 형태를 띤 미국계 5대 곡물메이저는 세계 곡물교역량의 반 이상을 취급하면서 그들의 독점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곡물가격의 불안정은 이와 같은 시장의 독과점적 성격 이외에도 곡물시장 자체의 협소성과 곡물 수요공급의 비탄력성에 의해 야기된다. 1960년 이후 세계곡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총 교역량은 총 생산량의 10∼13%에 지나지 않고 수출할 수 있는 국가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수입국은 어떤 요인에 의해 수요증가가 발생할 경우 국제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좀처럼 수입량을 감축시키려 하지 않는 성향을 갖고 있고, 수출국들도 자국의 식량안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국제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수출량을 크게 증대시키지 못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밖에도 식량은 정치적 갈등에 의해 언제라도 전략무기화될 가능성을 갖고 있는데, 이로 인해 시장의 불안정이 야기되기도 한다. 1980년 아프카니스탄 침공의 보복조치로 미국이 소련에 대한 곡물 금수조치(禁輸措置)를 내려 소련이 여타 국가로 수출국을 돌려 세계곡물무역 구조에 변화가 생겼고 국제곡물가격이 상승했다. 이처럼 식량의 전략무기화는 식량외교전략의 대상국에게만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식량수입국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식량안보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급도를 유지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환경 보전 기능]

농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양(+)의 외부효과를 갖는 긍정적 영향과 음(-)의 외부효과를 갖는 부정적 영향이 있다. 즉 농업은 대기정화, 수질정화, 홍수방지, 수자원 함양, 토양유실 방지, 폐기물 처리 등의 다양한 환경보전 기능을 갖는 동시에 농약과 비료의 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유발하기도 한다.
여기서 다원적 기능의 개념화를 부정하는 쪽에서는 농업의 환경에 대한 역기능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역기능으로 인한 음(-)의 효과는 이미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정책적으로 반영되어 법에 의한 규제나 조세부과 등으로 시장실패에 대한 대응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농업의 환경보전 효과가 갖는 양(+)의 외부효과에 대한 해결방안 모색을 거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된다.
농업의 환경보전 기능의 구체적 내용으로는 먼저 대기정화를 들 수 있다. 최근 몇 십년 동안의 경제발전과정에서 화석연료의 사용은 매년 증가하여 왔고, 이에 따른 탄산가스 발생량도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농업은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탄산가스를 줄이고, 산소를 방출하는 대기정화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농업은 수질을 정화하고 있다. 수질을 오염시키는 주요 오염원은 생활하수, 산업폐수, 농업유출수 등이며 중금속, 유해화합물, 유기물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이렇게 오염된 물은 인위적인 정화과정을 거쳐야 경제활동에 사용할 수 있는데, 이에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그런데 이와 같이 오염된 물은 농지에서 농업용수로 이용되는 동안 상당부분 정화된다. 작물을 재배할 경우 수질 오염물질인 질소와 인산은 비료성분으로 작물에 흡수되며 또한 작물이 미처 흡수하지 못한 비료성분 및 기타 오염물질은 토양이 흡수하기 때이다.
농업은 수자원 함양기능이 있다. 벼 재배시 논은 평평한 면적에 물을 장시간 저장하면서 땅속에 물을 침투시킨다. 이렇게 침투된 지하수는 청정 음용수원이 될 뿐 아니라, 하천으로 천천히 유입되어 하천의 유량을 조절하고, 특히 가뭄 시에는 취수량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 농업은 또한 지하수를 충전하여 지반을 떠받치는 역할도 담당한다. 만약 지하수 함량이 풍부하지 못하면 지반침하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경우 발생하는 재앙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농업은 또한 홍수방지 기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경사가 급하고 강우가 여름에 편중되어 있으며 집중호우가 잦아 홍수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논은 장마철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빗물을 일시에 저정하는 댐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밭은 빗물을 흡수하여 하류의 홍수피해를 방지하거나 경감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농업의 홍수조절 기능은 강우시 논밭에 저류 또는 흡수되는 빗물과 동일한 량을 저류할 수 있는 댐의 건설과 같은 효과를 갖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농업은 토양유실을 경감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사지가 많고 여름철의 집중호우가 잦아 토양유실이 많은 편이다. 이러한 토양유실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조림 또는 사방댐을 건설하는 사방사업이 많이 쓰여 왔다. 농업은 이러한 경사지에 작물을 재배함으로써 토양유실을 경감시킨다.
농업이 갖는 환경보전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폐기물 처리 기능이다. 우리나라는 생활쓰레기, 산업폐기물 등을 비롯한 각종 폐기물이 연간 13∼15만톤 정도가 발생된다. 이러한 폐기물은 소각 또는 매립을 통해 처리되는데 이에 많은 비용이 투입되고 있다. 또한 가정 또는 산업체에서 발생하는 오폐수는 하수종말처리장이나 공장폐수처리장에서 정화처리되어야 하나 생활하수의 경우 전체 오수의 40%정도만 처리되고 나머지는 하천으로 방류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농업은 토양 중에 미생물을 포함하고 있어 유기물 쓰레기를 분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분해된 쓰레기는 농작물에 다시 비료로 환원되기 때문에 환경보전과 토양의 비옥도 증진의 이중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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