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5 격주간 제664호>
<4-H교사 이·야·기> 흙으로 삶의 순리 알려주는 4-H

<박 흥 모>
경남 진주의 산골 시골마을에서 나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 대신 형이 하던 농사일을 물려 받아 농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 형이 일구어 놓은 과수원에서 수확을 맛보기 시작하면서 땅은 사람이 노력한 대가를 꼭 돌려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농사를 지으며 번 돈으로 뒤늦게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끝내는 대학원까지 고학을 해서 다닐 수 있었다. 사실 대학 시절 방학 때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다른 친구들처럼 토플을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겨울 방학 때는 과수원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주고, 여름방학이면 수확을 해야 하는 나에게는 과욕이었을까! 더운 여름에도 잠시 쉴 여유조차 없이 복숭아를 땄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한 손에는 영어 단어장을 들고 다니며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 와서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시절을 생각하면 참 감회가 새롭다. 내가 겪은 농촌생활은 역경과 심리적 외상의 경험이 고통으로서만 부각될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원숙한 인간이 되게 하는 값진 기회였으며 내 인생을 살찌운 자양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어려운 환경을 이겨냈기에 나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고, 교사가 된 지금도 ‘지시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교육자’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나에게 그 누구보다 큰 스승인 농촌을 잊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자진해서 학교4-H를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미래를 심어주자! 희망을 심어주자!” 이처럼 항상 긍정적인 사고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내가 만약 교사가 되면 말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교육사상을 심어 주겠다는 마음을 가슴 속에 늘 품고 있었다. 그래서 교사가 되고 나서 웅변, 글짓기, 레크리에이션, 봉사활동, 풍물, 외국어 말하기 대회 지도 등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그러던 중에 2004년도에 내가 어릴 때에 잔디 씨를 훑어서 팔고, 아카시아 잎을 따서 말려 팔고, 두엄을 만들기 위해 풀을 모으던 그 4-H회가 아직 있다는 것을 듣고 솔직히 처음에 지금 어떤 시대인데 아직 4-H라니 하며 반문을 하였는데, 4-H경진대회, 야외교육 등 많은 행사에 참석하면서 4-H회가 농촌 잘 살기 운동뿐만 아니라 시대에 맞는 정신 계몽과 함께 실천하는 동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촌에서 성장한 나는 삶의 순리를 잘 알려 주는 땅의 진리를 알기에 4-H활동을 통해 학생들에게 교실 밖에서 또 다른 것을 가르쳐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여 4-H지도교사를 맡게 되었다.
우리학교 4-H회원들은 텃밭 가꾸기를 통해 고구마, 배추, 토란, 옥수수 등을 재배하면서 농촌을 이해하며 우리의 먹거리가 얼마나 많은 농업인들의 손길과 땀으로 만들어지는가를 배운다. 야생화가 만발한 야생화단지를 거닐며 자연사랑 농촌사랑의 마음을 가슴에 다시 한 번 품는다.
아픔과 시련을 이겨낸 사람만이 인생의 참 의미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회원들이 지금 내 앞에 놓여진 어려움과 시련을 묵묵히 견뎌냄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는 태풍에도 이겨낼 수 있는 뿌리 깊은 나무로 성숙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제일고4-H가 그리고 여주군4-H가 정말 나날이 발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라나는 우리 새싹 학생회원들처럼…
 〈경기 여주군 여주제일고4-H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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