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1 격주간 제900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침묵은 죄악이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도 말도 잃지 않는다”
知者 不失人 亦不失言(지자 불실인 역불실언)
- 《논어(論語)》 중에서


말을 조심하라는 충고는 매우 흔하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기뻐하거나 화를 내는 것은 모두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입과는 상관없으니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좋다.”, “병에 뚜껑을 잠그듯이 입을 닫고, 적이 쳐들어왔을 때 성문을 굳게 잠그듯이 말을 삼가라.”, “남을 시기하거나 헐뜯지 말고, 그런 말을 듣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말라.”, “작은 불씨 하나가 넓은 숲을 태워버릴 수 있고, 짧은 반 마디의 말이 평생 쌓아온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 “입과 혀는 나쁜 일과 근심을 불러와 결국 나를 무너뜨리고 만다.”, “입은 사람을 해치는 도끼와 같고 말은 혀를 잘라버리는 칼과 같으니, 입을 막고 혀를 함부로 놀리지 않으면 늘 편안할 것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 찾아낸 말조심에 관한 내용이다. 한결같이 ‘침묵은 금이다’라는 방향을 고수하고 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는 대체적으로 입을 닫으라는 충고를 해주고 있지만 《맹자(孟子)》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말을 하지 않아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는 것은 그 말로 인해 이익을 보기 위함이며(未可以言而言 是以言之也), 반대로 말을 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可以言而不言 是而不言之也).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말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모두 좀도둑질과 같은 것이다(是皆穿踰之類也).”
맹자에게 있어 말은 단순히 조심해야 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사익(私益)을 위한 것이냐 공익(公益)을 위한 것이냐’로 나뉘기 때문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이 일반인들을 위한 지침이라면 《맹자(孟子)》는 지식인들을 위한 지침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침묵할 때와 말을 해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에 말하는 것은 그 죄가 작지만(未可以言而言者 其罪小), 말해야 할 때에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죄가 크다(可以言而不言者 其罪大).” 정조가 신하들과 《맹자(孟子)》를 읽고 공부하며 나눈 대화를 기록한 〈추서춘기(鄒書春記)〉에 나오는 정조의 말이다.
정조의 학구열은 대단한 것이었다. 《논어(論語)》를 공부하며 나눈 대화를 기록한 〈노론하전(魯論夏箋)〉과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공부하며 나눈 대화를 기록한 〈증전추록(曾傳秋錄)〉이란 책도 남겼을 정도였다. 정약용도 정조의 공부에 참여하며 학문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정조의 학문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말해야 할 때에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죄가 크다’는 정조의 생각은 앞서 《명심보감(明心寶鑑)》의 내용과 크게 다르다. 침묵하는 게 좋다고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비겁한 침묵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말할 만한데도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못한데도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知者 不失人 亦不失言).”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는 공자의 말이 결론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다. 상황판단 능력과 지혜로움이 우선이다.
스스로 돌아보자. 불의(不義) 앞에서 침묵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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