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1 격주간 제898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살아있는 순간 전체가 공부시간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非學問 無以爲人(비학문 무이위인)
- 「격몽요결(擊蒙要訣)」 중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문(學問)’을 영어로 표기하면 ‘study’일까 아니면 ‘learn’일까. 여러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유학(儒學)에서 말하는 ‘학문(學問)’은 ‘learn’에 가깝다. ‘study’에는 조사와 연구, 검토 등의 뜻이 포함되지만 ‘learn’에는 깨우치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되다, 기술을 익히다 등의 뜻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성인(聖人)들과 훌륭한 학자들이 남긴 책을 읽고 공부하면 누구나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 바른 이치를 깨닫고, 이것을 직접 실천에 옮겨 몸과 마음을 바르게 만드는 것이 학문이며,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올바른 길입니다. 더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올바른 길은 아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은 아직도 혼란스러울까요? 연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실천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는 공자나 맹자가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무엇인가를 더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연구가 아니라 실천입니다.”
율곡이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완성한 후에 선조(宣祖)에게 이 책을 올리며 동봉한 편지에 나오는 글이다. 율곡은 이 글에서 ‘학문은 연구가 아니라 실천’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율곡이 제시하는 학문의 길은 매우 간명하다. 책을 읽어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현실의 삶에 적용하며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율곡은 선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실천’을 강조하면서 이런 글을 덧붙인다.
“그토록 많은 책들이 바른 길을 알려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정성스럽고 성실한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성스럽고 성실한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요? 책을 읽어도 다만 머리와 눈으로만 읽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바른 이치가 무엇인지 연구만 하고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직접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고 사소한 것부터 직접 실천에 옮겨 몸과 마음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몸과 마음에 익숙해지는 것이 얼마나 편안하고 즐거운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깨달음을 한번 경험하면 그 이후에는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억지로 노력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정성을 기울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성실한 노력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성스럽고 성실하게 하라’는 글을 백번 읽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직접 실천해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제가 강조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율곡의 말처럼 유학(儒學)에서 말하는 공부, 학문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통해 구현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공부시간이 따로 없다. 살아있는 순간 전체가 공부시간인 셈이다.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학문을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人生斯世 非學問 無以爲人).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 이것을 ‘학문’이라고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 학문이 있음을 모르고 마치 까마득히 높고 먼 곳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학문을 포기하고 스스로 주저앉아 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격몽요결(擊蒙要訣)》에 나오는 율곡의 말이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살아있는 매 순간이 공부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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