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1 격주간 제892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라
切問而近思(절문이근사)"
- 《논어(論語)》 중에서


《근사록》은 1175년 4월, 주희와 여조겸이 만나 10여일 함께 지내며 주돈이(周敦, 1017-1073), 장재(張載, 1020-1077), 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 1033-1107) 등 선배 학자들이 남긴 어록과 문집 등을 읽으며 공부한 결과물이다. 주희와 여조겸은 중요한 대목을 정리하여 뽑고 이듬해 이를 다시 살핀 후 1178년 4월에 14권으로 완성한 책이다.
주희는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을 길잡이로 삼는다면, 비록 외진 시골에 있더라도, 학문을 이끌어줄 훌륭한 스승과 좋은 친구가 없더라도, 혼자서 충분히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더해 이런 말도 남겼다. “(그러나) 이 책만 대강 읽고 공부를 끝내려고 한다면, 이 책을 만든 우리의 의도는 실패한 것이다. 이 책으로 학문을 시작하라는 뜻이지 이 책으로 학문을 끝내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시작일 뿐이다. 이 점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근사록》을 “학문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조겸은 후기를 담당했다. “이 책의 순서에 따라 배우면 낮은 곳에서 시작해서 높은 곳에 오르고,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서 먼 곳에 이르는 길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편집한 뜻은 거기에 있다. 낮고 가까운 곳을 무시하고 무작정 높고 먼 곳으로 달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자들은 이 책의 제목이 왜 《근사록》인지 잘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여조겸이 방점을 찍은 《근사록》이라는 제목은 《논어》에 나오는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면(切問而近思) 인(仁)은 그 가운데 있다”라는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학문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은 《근사록》에 나오는 ‘시작’에 대한 충고들을 모아보았다.
“순수한 물 한 방울은 매우 깨끗하다. 그러나 여러 물방울이 모여 아래로 흘러가기 시작하면 조금씩 달라진다. 멀리 흘러가지도 않았는데 금방 더러워지는 물도 있고 멀리 흘러가서야 비로소 더러워지는 물도 있다. 그 더러움의 정도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탁하고 맑은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 물인 것은 분명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처음의 맑음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 머뭇거리지 않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힘써 노력하면 빠르게 깨끗해질 것이고, 성실하지 못하고 게으르면 한참이 지나야 깨끗해질 것이다. 더러움을 이겨내고 깨끗한 상태가 되면 최초의 물처럼 맑게 변할 것이다. 이것은 더러운 물을 버리고 깨끗한 물로 바꾼 게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다. 더러움과 깨끗함, 선과 악은 둘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의 상태로 있는 것이며, 변화를 통해 바뀔 뿐이다.”
“학문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밖에서만 구하려고 한다. 보고 들은 것이 많고 기억력이 뛰어나며 훌륭한 말솜씨와 글재주를 지니려고 애를 쓸 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 드물다.”
“올바른 길을 걷는다는 것의 뜻은 매우 넓어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잘 모를 때도 있다. 이럴 때에는 반드시 성실함이 그 시작임을 상기하기 바란다.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임하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뜻은 크게 갖고 실천은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라.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때에는 머리와 입으로만 토론하지 말고 직접 실생활에서 모범을 보여 서로 배우는 것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바로 코앞만 보지 말고 더욱 넓고 크게 멀리 시야를 넓혀라. 9층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높이 올라갈 것만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그 전에 기초를 얼마나 튼튼하게 해야 하는지 살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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