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5 격주간 제891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사람들을 넓게 만나라

“귀한 옥을 다듬기 위해서는 거친 돌이 필요하다”
他山之石 可以攻玉(타산지석 가이공옥)
- 《시경(詩經)》 중에서


요즘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SNS’는 글자 그대로 관계맺음을 뜻한다.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만 만나는 게 아니다. 만난 적이 없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도 연결하여 관계를 맺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의견을 전달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특성이 사라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는 관계를 끊어버린다. 내가 듣기에 편하고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남는다. 결국 비슷한 견해와 비슷한 의견을 지닌 사람들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연스럽게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물 안 개구리’가 여러 마리 있을 뿐, 달라지는 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경(詩經)》에 나오는 시(詩), 좥학명(鶴鳴)좦을 살펴보자. ‘학명(鶴鳴)’은 ‘학(鶴)의 울음소리(鳴)’를 뜻한다.
“학이 언덕에 올라 우는데, 하늘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네(鶴鳴于九皐 聲聞于天). 물고기도 얕은 물가에서 노닐더니 순식간에 물속 깊이 들어가는구나(魚在于渚 或潛在淵). 아름답게 꾸며놓은 저 정원을 보라, 멋진 박달나무도 있지만 형편없는 닥나무도 무성하구나(樂彼之園 爰有樹檀 其下維穀). 다른 산의 거친 돌이라고 하찮게 여기지 말라. 귀한 옥을 다듬기 위해서는 그 돌이 필요하나니(他山之石 可以攻玉).”
하늘은 무슨 이유로 학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물고기는 무엇 때문에 얕은 물가와 깊은 물속을 오가는가. 잘 꾸며놓은 정원에 멋진 박달나무만 있으면 그만이지 보잘 것 없는 닥나무는 왜 심어놓았는가. ‘옥(玉)’을 지니고 있는데 굳이 다른 돌이 왜 필요한가.
‘타산지석(他山之石)’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혹은 머물고 있는 곳에 있는 돌이 아니라 다른 산에 있는 돌’이다. 내가 지닌 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지닌 돌이다.
“내가 지닌 돌은 가치가 높은 ‘옥(玉)’이지만 다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돌은 그냥 평범한 ‘짱돌’이다. 다른 사람의 울부짖음은 학의 울음소리처럼 꽥꽥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처럼 위대하고 품격이 높은 내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는 소리다. 나는 깊은 물속에 조용히 지내고 있는 큰 물고기다. 물가에서 깔짝거리는 피라미와는 다르다. 나는 아름드리 박달나무다. 잡풀처럼 지저분하게 자라나는 닥나무와는 다르다.”
이런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송(宋)나라의 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은 이렇게 충고해준다.
“옥은 일반적인 돌에 비해 부드러운 돌이다. 그런데 두 개의 옥을 서로 문지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듬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거친 돌로 문질러야만 다듬을 수 있다. 옥을 군자라고 하고 거친 돌을 소인이라고 생각해보라. 군자가 소인과 함께 생활하게 되면 소인으로부터 피해를 당할 수 있으며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스스로를 더욱 다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모자란 부분은 채우고, 조금이라도 지나친 부분은 다듬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방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꼬투리까지 미리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다.”
담을 쌓는 게 아니라 다리를 놓는 지혜가 필요한 요즘이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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