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5 격주간 제891호>
[이달의착한나들이] 수표교에서 사랑을 돌아보다
-  서울 수표교  -

내 사랑에게 반딧불이 시를 읽어주었다.

서울 장충단공원엔 수표교가 있다. 조선 세종 때 청계천에 놓았던 아름다운 돌다리. 복개 공사로 청계천을 떠나왔다가 물줄기가 돌아온 지금도 돌아가지 못하고 장충단공원에 남겨진 다리. 다리는 이제 늙어 청계천으로 옮기기도 어렵다고 한다. 세상은 변해 빌딩이 솟고 자동차가 질주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리에선 사랑이 피고 진다.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도 이 다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수표교 근처엔 왕들의 영정을 모신 영희전(永禧殿)이 있었는데 참배를 하고 돌아오던 숙종이 자신의 행차를 지켜보던 장희빈을 발견하고 한눈에 반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질투로 왕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장희빈은 사약을 받는다. 눈을 부릅뜨고 사약 한 사발 더 부으라고 소리치던 숙종. 그들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사랑을 돌아본다. 변질되는 사랑의 속성을.
수표교는 영화 〈뽕네프의 연인들〉에 나오는 다리를 닮았다. 크기와 화려함은 비교가 안 되지만 사랑 이야기를 간직했기 때문일까?
실명의 위기로 집을 나온 여자 화가와 다리 위에서 노숙을 하던 절름발이 청년의 사랑 이야기. 그들은 다리 위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바닷가를 알몸으로 달리며 사랑을 나눈다. 그들이 가진 건 젊음과 뽕네프다리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가 신약이 개발되었으니 돌아오라는 포스터를 사방에 붙이면서 청년은 포스터에 불을 지른 방화범이 되고 여자는 떠난다. 청년의 소망은 오직 여자의 실명이었다. 그래야 함께 살 수 있으니까. 혼자 남은 청년은 권총으로 자신의 손을 쏘며 중얼거린다. “아무도 내게 잊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없어!”
3년 후 청년이 감옥에서 나오던 날 둘은 다리에서 만난다. 그날 남자는 여자를 안고 눈 내리는 세느강으로 뛰어든다. 그들은 모래를 싣고 가는 배에 구조되어 그 배의 종착지까지 가서 살기로 한다. 먼 훗날 그들이 웃으며 이 순간을 돌아볼 수 있기를!
호도라는 섬에 민박집이 있다. 그 집엔 어부인 할아버지와 귀먹은 할머니가 산다. 휴가를 가 여럿이 평상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다가와 할아버지 뒤통수를 탁! 내리치는 것이었다. 장희빈은 사약을 받았지만 할아버지는 싱긋 웃더니 말없이 숟가락을 주워 계속 밥을 먹는 게 아닌가? 사랑의 높은 경지는 바보가 되는 것.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미는 사랑.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 바람깨나 피웠다고 한다. 할머니는 술집에 있는 할아버지를 끌고 오기 일쑤. 그러나 인고의 다리를 건너왔기에 완성되는 사랑도 있다. 우리가 떠나올 때 할아버지는 부두에 서서 두 팔을 들어 올려 하트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하트가 점이 될 때까지 바라보았다.
한 해가 저무는 12월, 나는 수표교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거기엔 바보가 된 사랑의 경지는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이기적이고 그늘진 사랑을 돌아보며 〈반딧불이〉란 내 시 한 편을 떠올렸다.
“밤길을 날아가요// 이마에 불을 켜면/ 눈앞이 환할 텐데// 옆구리에 불을 켜면/ 길옆이 환할 텐데// 꽁무니에 불을 켜고/ 반짝반짝 날아가요// 지나온 길이/ 환하라고.”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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