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5 격주간 제889호>
[이달의착한나들이] 혼자라고 생각 말기

-  서울 항동철길  -

평행선이 따듯한 글씨를 품고 먼 길을 가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 기차가 지나는 철길이 있다.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서 소문이 난 길. 그 길은 서울 오류동에 위치한 항동철길이다. 도심의 뒤안길에서 만난 녹슨 철길은 추억을 간직한 사람처럼 외롭고도 행복해보였다. 철길에 기대어 잡초가 자라고 철 늦은 민들레 한 송이가 노오랗게 웃는 길. 철길에 서면 인생이 보인다. 혼자지만 둘이 가는 길. 끝없이 뻗어나간 평행선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라이언〉이란 영화가 있다. 철길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사루라는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의 이야기다. 5살 사루는 형이랑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고 석탄을 훔쳐 끼니를 때우는 아이였다. 어느 날 사루는 형을 기다리다 기차에서 잠이 들어 뱅골까지 가게 된다. 그곳은 언어마저 다른 낯선 땅! 5살 사루는 혼자가 되었다. 노숙을 하고 화장터에서 음식을 훔쳐 먹고 인신매매범에게 쫓기기도 하지만 결국 고아원을 거쳐 호주로 입양을 가게 된다. 호주는 고향에서 7,600킬로미터! 그러나 눈이 파란 양부모는 사루에게 새 세상을 열어준다. 사루를 바라보는 양엄마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빛난다. 양엄마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약속을 한다. “내 아들아, 언젠가 너의 모든 걸 말해줘. 난 네 말을 들어줄 거야! 언제까지나.”
텔레비전을 처음 본 사루! 사루는 좋은 집과 자기 방을 가지게 된다. 사루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양부모는 인도 아이 한 명을 더 입양한다. 사루의 형이었다. 그러나 형은 학대받은 과거로 인해 자해를 하는 아이였다. 자신을 찌르고 때릴 때면 전쟁터가 되었고 양엄마는 아이를 안고 울었다. 어른이 되어도 증상은 여전했지만, 그녀는 한결같이 형의 편이었다. 그러나 사루는 형을 끔찍이 미워하게 된다.
사루는 대학원에서 인도 친구를 만나면서 친엄마와 형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는 양부모 집을 나와 직장도 그만두고 몇 년 동안이나 구글어스로 인도의 모든 철로를 뒤지게 된다. 기차를 타고 온 희미한 기억밖에 없었으므로. 그러던 어느 날 사루는 양엄마를 찾아가 묻는다. “엄마가 불임이 아니었다면 고아를 키우지 않았겠지요?” 그러자 그녀는 말한다. “어떤 사람에겐 길이 하나밖에 없단다. 난 불임이 아니야. 세상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래서 아이를 갖지 않고 너희들을 선택한 거지. 불행한 아이에게 살아갈 기회를 주는 것! 그게 중요하니까!”
이 영화는 실화다. 사루는 양엄마의 격려로 2013년, 25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 친엄마를 만난다. 그날 양엄마는 호주에서 사루의 음성을 들으며 오열한다. “엄마! 친엄마를 찾았어요. 그렇다고 엄마의 의미가 달라진 건 없어요. 사랑해요. 정말 많이! 그리고 형도요!”
사랑은 흘러가는 것! 그래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한 여인의 인류애적인 사랑이 사루에게 흘러와 끔찍이 미워했던 형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으로 흘러와 수많은 관객을 울렸다.
항동철길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혼자라고 생각 말기〉 나는 그 글씨 앞에 서서 멀리 바라보았다. 두 줄기 평행선이 따듯한 글씨를 품고 먼 길을 가고 있었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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