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5 격주간 제887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너무 앞서 나가지 말라
“‘우산’의 나무는 원래 울창하고 아름다웠었다”
牛山之木 嘗美矣(우산지목 상미의)
- 《맹자(孟子)》 중에서


가을을 흔히 ‘결실(結實)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결실(結實)이란 열매(實)를 맺는다(結)는 뜻이니 가을이 되면 풍성한 결과를 얻는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다. 속이 꽉 들어찬 곡식이 아니라 껍질만 있고 속이 빈 쭉정이만 가득 지니게 되는 사람도 있게 된다. 농사를 망친 것이다.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갑작스런 자연재해 때문일 수도 있다. 잘못된 사회제도나 포악한 사람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유와 상관없이 초라한 결과물을 얻은 사람들은 풍성한 수확을 올린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포자기(自暴自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집의 담장을 넘기도 한다. 마음이 급해져 이리저리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려고 분주하게 돌아치며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사람들은 민둥산인 저 ‘우산(牛山)’을 보며 초라한 산이라고 비웃지만) ‘우산’의 나무는 원래 울창하고 아름다웠었다(牛山之木 嘗美矣). 그런데 근처에 큰 도시가 있어 많은 목재가 필요했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사람들이 도끼를 들고 산으로 들어가 나무를 찍어 가져가니 황폐한 산이 되고 말았다. 나무가 사라져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비와 이슬이 산을 촉촉이 적셔주어 새싹이 돋아나 옛 모습을 되찾나 싶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소와 양을 끌고 와서 목축업을 시작했다. 소와 양들은 새로 돋은 싹의 뿌리까지 먹어버렸고 결국 저렇게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사정도 모르면서 ‘우산(牛山)은 벌거숭이산이야’라고 말하는데, 본래 그랬던 것이 아니다.”
본래는 울창하고 아름다운 산이었으나 욕심에 의해 훼손당한 ‘우산(牛山)’은 사람의 마음을 은유한다. 본래 타고난 선(善)한 마음을 잘 보존하라는 맹자의 말이다.
여기서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냥 가만히 놓아두는 것’이 그것이다. 이미 크게 훼손당했다면 조용히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단단히 잡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 속에서 회복이 이루어진다. 섣부르게 해결하려고 달려들면 역효과가 날 뿐이다.
“마음을 잡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움직임도 없이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중심을 잘 잡고 있음을 뜻한다. 예를 들면 물레방아와 같다. 물레방아는 물의 흐름에 따라 계속 쉬지 않고 돌아간다. 그러나 중심축이 확고하게 잘 고정되어 있기에 계속 돌아가며 움직여도 흐트러짐이 없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잘 잡고 있는 것이다.”
송나라의 학자 정이(程)가 맹자의 은유에 대해 덧붙인 설명이다. ‘마음을 잡다’에 대해서는 주자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충고한 내용이 있다.
“내가 예전에 동안(同安)이라는 마을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종소리가 한 번 울리면 내 마음이 먼저 달려가 그 다음에 울릴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소리 하나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 다음 종소리를 향해 달려갔다는 뜻이다. 이때에 나는 깨달았다. ‘지금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 서둘러 다음을 기대하고 먼저 미래를 기웃거리면 안 되는 것이로구나! 지금 현재에 충실해야 그 다음도 있는 것이로구나!’ 마음을 단단히 잡고 있는 것은 이토록 중요하다.”
서둘지 말자. 천천히 숨을 고르며 뒤돌아보는 것이 그 어떠한 행동보다 현명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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