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5 격주간 제879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진짜 도둑은 따로 있다

"큰 도둑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 죽을 것이다
大盜不去 民盡劉(대도불거 민진류)"
- 《감사론(監司論)》 중에서


정약용의 《감사론(監司論)》은 논문이 아니다. 정약용이 남긴 글을 모아놓은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 중에 시문(詩文) 편에 속해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사론(監司論)》을 읽으면 단순한 수필이 아님을 금방 깨닫게 된다.
‘감사(監司)’는 누구인가. 요즘으로 치면 ‘도지사’ 정도에 해당한다. 일명 ‘관찰사(觀察使)’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도에 대해서는 경찰권·사법권·징세권 등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그런데 정약용은 이러한 감사(監司)가 큰 도둑이라고 말하며 “큰 도둑(감사)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 죽는다(大盜不去 民盡劉)”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깊은 밤, 담을 뛰어넘거나 문을 따고 들어와 물건을 훔쳐가는 자가 도둑인가? 아니다. 이는 배가 고픈 사람이 굶주림을 참지 못해 그런 것이다. 칼이나 몽둥이를 감추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위협해 돈을 빼앗은 다음 그를 찔러 죽여서 증거를 없앤 자가 도둑인가? 아니다. 이는 어리석은 자가 본래 지니고 있던 양심을 잃어서 그런 것이다.”
정약용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다음에 등장한다.
“여기에 큰 도둑이 있다. 큰 깃발을 세우고 큰 양산을 받치고 큰 북을 치고 큰 나팔을 불면서 두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옥(玉)으로 꾸민 모자를 쓰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자는 수백 명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며 선물을 바친다. 손에는 채찍을 쥐고 행렬을 지켜보는 백성들이 큰 소리로 떠들지 못하게 겁을 주는 사람이 8인이다. 그 행렬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수천 명이다. 중간에 밥 먹을 때가 되면 식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혹시라도 간을 잘못 맞추었거나 음식이 식었으면 그 죄를 물어 곤장을 친다. 곤장 치는 사람만 10인이 넘는다. ‘길에 돌이 있어서 내 말이 넘어졌다’, ‘길가에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영접하는 여인의 수가 적었다’, ‘병풍이 볼품없었고 횃불이 밝지 않았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고작 이런 것들이다.”
‘감사(監司)’에 오른 자가 자기가 다스릴 지방 곳곳을 돌아보는 풍경이다. 원래는 각 지역의 상황을 파악하라는 게 목적이지만 변질된 것이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고 뇌물이 판을 치는 초호화판 행렬로 변한 것이다. 정약용은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감사’가 바로 ‘큰 도둑놈’이라고 말한다. 좀도둑이나 강도는 새 발의 피가 아닐 수 없다.
“도장을 새겨 위조문서를 만들고 법률 조문을 멋대로 해석하여 법을 남용한다. 못된 짓을 저지른다는 소문이 나면 ‘누군가 악의적으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라며 그냥 지나치고 만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한 사람이 문책을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높은 근무성적을 받아 승진한다. 이 도둑놈은 야경(夜警) 도는 사람도 감히 따지지 못하고, 의금부(義禁府)에서도 감히 체포하지 못하고, 어사(御史)도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재상(宰相)도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멋대로 난폭한 짓을 저질러도 아무도 감히 따지지 못하고, 수많은 토지를 소유한 채 종신토록 안락하게 지내지만 아무도 이러쿵저러쿵 헐뜯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어찌 큰 도둑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군자(君子)는 이렇게 말한다. ‘큰 도둑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이 다 죽을 것이다(大盜不去 民盡劉)’.”
‘이제는 그렇지 않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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