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5 격주간 제871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절제(節制)의 미학, 석복(惜福)의 지혜

"멈출 때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
知止不殆(지지불태)"
 - 《도덕경(道德經)》 중에서


새해에 가장 많이 오가는 말이 바로 ‘복(福) 많이 받으세요’다. 복(福)은 ‘좋은 운수(運數)’나 ‘행운(幸運)’을 뜻한다. 운수나 행운은 사람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하늘의 움직임과 기운(氣運)에 따라 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을 할 때에는 ‘하늘이 주는’이라는 앞 문장이 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축복을 받으며 새해를 시작한다. 그런데 한 해를 마무리할 무렵, ‘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어떤 사람은 복을 받았지만 어떤 사람은 복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까?
하늘의 움직임과 기운은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그렇기에 그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누구나 복을 받는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누구는 복을 받고 누구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다른 결과를 보이는 것일까.
동양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으로 ‘석복(惜福)’을 이야기한다. 석(惜)은 소중하게 여겨 아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석복(惜福)’은 복을 아껴서 사용한다는 뜻이 된다. 돈을 절약해서 사용하면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꺼번에 내지르면 나중에 쫄쫄 굶게 된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공동체를 이루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명한 스승들은 대부분 ‘절제’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갖고 싶은 것이라 하더라도 끝장을 보겠다는 자세로 마지막까지 치달리지 말라고 말한다. ‘갈 데까지 가보자’며 사생결단을 내겠다고 달려들지 말고 상황을 봐가면서 적절함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절제’다. 정도를 넘지 않도록 스스로 알맞게 조절하고 제한하는 것을 뜻한다.
‘절제’가 중요한 이유는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 혼자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의 상황도 봐야 한다. 그 사람의 형편은 돌보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내 욕심만 채우려한다면 협력관계는 무너진다. 협력 관계가 무너지면 나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 나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절제’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절제’와 ‘협력’이 바로 석복의 지혜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때를 깨닫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길이 오래도록 편안할 수 있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노자(老子)의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도가 알맞은 때일까. 어느 정도에서 멈춰야 하고 어느 선에서 만족을 해야 하는가.
옆에 있는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낯빛을 잘 살펴야 한다. 절제는 협력을 위한 것이므로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내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재주가 많더라도 다 사용하지 말고 아껴두었다가 죽을 때 자연에게 돌려주고, 나라에서 주는 것이 많더라도 다 사용하지 말고 아껴두었다가 죽을 때 나라에 돌려주고, 재산이 많더라도 다 사용하지 말고 아껴두었다가 죽을 때 사회에 돌려주어라. 그렇게 하면 저절로 복이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복이 저절로 들어와 쌓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사용하는 게 바로 ‘분복(分福)’이다. 주변 사람들과 복을 나누는 것이다. ‘석복(惜福)’하여 아껴 쓰고 그래도 남으면 ‘분복(分福)’하자.
〈이도환 /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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