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5 격주간 제869호>
[이달의 착한나들이] 새해, 무엇을 세며 살까
황재형 화가의 신작 ‘십만 개의 머리카락’을 보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를 찾았다. 그림을 둘러보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멀리서는 수묵화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의 주름살도 눈동자도 모두 머리카락이었다.
황재형 화가는 왜 머리카락으로 그림 그릴 생각을 했을까? 그는 조선시대에 살았던 원이 엄마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원이 엄마는 지아비가 병에 걸리자 쾌유를 빌며 머리카락과 삼을 꼬아 미투리를 삼는다. 그러나 남편이 그 신을 신어보지도 못하고 죽게 되자 그녀는 한지에 편지를 쓴 후 미투리를 싸서 관에 넣어준다. 그 후 안동 정상동에 있던 무덤이 택지개발로 이장되면서 450년 만에 편지의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편지와 함께 그녀의 미투리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잡지인 지오그래픽에 실려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머리카락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는 많다. 크리스마스 날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사고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빗을 사는 가난한 부부의 이야기도 있고, 사랑에 눈 먼 삼손이 자신의 괴력이 머리카락에서 나온다는 비밀을 데릴라에게 알려 준 후 머리카락을 잘리고 눈을 빼앗기고 놋줄에 매여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형벌을 받기도 한다.
한 남자를 사랑하고 머리카락과 함께 묻힌 여인도 있다. 그것은 조만식 선생을 사랑한 전선애다. 상처한 아내와의 사이에 네 명의 자식을 둔 조만식 선생은 당시 56세의 할아버지였고, 전선애는 서른넷의 처녀였다. 독립운동에 여념이 없는 조만식 선생과 전선애를 이어준 분은 전선애가 다니던 교회의 박학전 목사였고 그들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9년 만에 결혼 생활은 끝난다. 면회를 간 전선애에게 조만식 선생은 편지봉투를 건넨다. 그 속엔 하얀 머리카락이 한 움큼 들어있었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그 머리카락은 조만식 선생의 시신을 대신해 현충원에 묻혔고 전선애도 그 옆에 잠든다.
전시장 2층 입구엔 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그린 작품이 있었다. 그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사람들 중 한 여인이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감꽃’이라는 노래였는데 가사가 종소리처럼 내 마음을 울렸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노래를 부른 이는 가수 박경하였다. 황재형 화가의 부인과 친한 사이라고 했다. 시대를 초월해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산다. 조선 시대 원이 엄마의 미투리가 있어 오늘날의 화가가 머리카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가수는 노래를 하며 나는 칼럼을 쓴다. 이제 다시 새해다. 우리는 무엇을 세며 살아야 훗날 누군가의 가슴에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김금래 / 시인〉

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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