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01 격주간 제866호>
[지도자 탐방] 4-H는 삶에 필요한 실질적인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학교
곽 달 규 회장 (강원 평창군4-H본부)

곽달규 평창군4-H본부 회장은 후배 4-H회원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걸어가는 기업’이라면서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을 잘 가꾸라고 당부한다.
“우리는 일찍이 청소년시절부터 올바른 회의진행법을 익혀 민주적인 방법으로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마을과 지역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지금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이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죠.”
4-H회라는 학교를 통해 인생의 좌표를 확실히 설정하고 지금까지 달려온 평창군4-H본부 곽달규 회장(65·강원 평창군 봉평면 북길동길 32-31)을 찾았다. 곽 회장은 4-H회에서 익힌 회의생활과 회원들의 친목도모, 각종 활동을 통해 이론이 아닌 실질적인 리더십을 길렀다.
곽 회장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생이 모두 144명이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100명이 중학교를 못 갔다. 이들에게 4-H회는 삶에 필요한 실질적인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학교였다. 회원들은 온실을 짓고 고추모를 기르며 영농기술을 익히는 등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익혔다. 4-H공동작업으로 잣을 따서 판매해 기금을 만들어 마을회관도 지었다고 한다. 또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금을 빌려줬는데, 이율이 5할을 할 때 3할의 이자만 받았다. 이렇게 늘린 자금은 회원들의 결혼비용으로 지원해 커다란 보탬을 주었다.
4-H회원 활동을 마친 곽 회장은 21세에 결혼을 하고 4-H자원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 평창군농촌지도소(지금의 농업기술센터) 허선 봉평지소장의 권유로 봉평면 총무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평생 농업인의 길을 걸어왔다.
곽 회장은 현재 16만5000여㎡의 땅을 일구는 억대농부이다. 그 가운데 13만2000여㎡에서 명이나물을 기르고 있다. 나머지 땅에는 감자와 메밀 등을 가꾼다. 그는 일찍이 25년 전에 명이나물에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내륙종을 심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강원도산림연구원 이근수 연구사로부터 울릉도명이나물 50뿌리를 얻어 재배해 성공하게 된다. 농업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안목은 이 50뿌리로 시작해 수백, 수천, 수만으로 커져나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곽 회장은 “내가 삶의 지혜를 배운 곳도, 농업인으로 성공한 것도, 사회에 기여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모두 청소년 시절 4-H활동을 하며 몸에 익힌 4-H정신이 기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2015년부터 올해까지 한국농촌지도자 평창군연합회장으로 활동했다. 아울러 평창군4-H본부 회장을 맡아 후배 4-H회원들의 육성에도 힘썼다. 3년 전 평창군 청년농업인4-H회원은 40명도 안되었다. 그는 청년농업인4-H회원이 100명을 넘으면 500만원의 기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임기를 마치는 올해, 목표치에는 모자라지만 회원이 70명으로 배가를 이뤘다.
곽 회장은 젊은 4-H회원을 ‘걸어가는 기업’으로 표현한다. 그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4-H회원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을 값지게 가꿔 행복과 성공을 얻으라고 당부한다. 그래서 올해 2월에 열린 한국4-H본부 정기총회에서도 4-H회원 배가운동과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육성 및 지원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3년 동안 평창군4-H본부를 이끌었던 곽달규 회장과 내년부터 바톤을 이어받아 평창군4-H에 헌신할 전병설 차기 회장.
한국4-H운동 70년. 그동안 4-H교육운동을 통해 국가발전의 주역이 되었던 회원들을 기자는 나름대로 4기로 구분한다. 제1기는 4-H의 도입과 확산에 참여했던 1947년부터 50~60년대 세대이고, 제2기는 4-H의 정착과 발전을 이끌었던 70~80년대 세대이다. 제3기는 이농현상으로 농촌사회가 커다란 변화를 겪었던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세대, 그리고 그 이후 정보화시대를 거치면서 지금 활동하고 있는 세대를 제4기로 볼 수 있다.
제1, 2기 세대의 4-H활동 현장은 마을이었다. 3, 4기 세대는 학교와 영농으로 구분된다. 그 중 1, 2기 세대는 마을의 4-H현장이 바로 학교였고 배움터였다. 한국의 4-H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배움에 목말라하던 농촌의 젊은 가슴에 시원한 물줄기를 대준 것이었다.
한국4-H운동 70년사에 곽달규 회장이 걸어온 삶은 4-H의 정신과 실천교육을 그대로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조두현 전문기자〉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4-H다이어리
다음기사   하림 김홍국 회장, 국가백년대계 위한 4-H역할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