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01 격주간 제635호>
숲 그늘이 물고기 유인해 어부림 기능도
이규섭의 생태기행 - 남해 물건방조어부림 -

초승달처럼 휘어진 해변에 노거목이 숲을 이룬 물건방조어부림은 자연생태 우수마을을 선정받게 하기로 했다.
소슬바람 따라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다면 70개의 크고 작은 섬이 보물처럼 빛나는 경남 남해로 떠나자.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남해는 천혜의 자연경관이 빼어나 어디를 가도 그림이 되고 시가 된다.
그 곳에 가면 원초적 삶의 원형과 만난다.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의 층층이 비탈에 선 ‘다랑이 논’은 아직도 소와 쟁기로 농사를 짓는다. 창선교 아래 지족해협에는 죽방렴 원시어업이 남아 멸치와 횟감을 뜰채로 떠낸다.

남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삼동면 물건리에 위치한 물건방조어부림(勿巾防潮魚付林)이다. 300년 동안 거친 파도와 바람에 맞서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숲이다. 그 곳을 찾아가는 물미해안도로의 경관도 어지럼증이 일정도로 아름답다.
창선교와 삼천포대교를 지나 3번 국도를 따라가면 물미도로와 만난다. 미조면 초전마을 삼거리에서 물건마을까지 해안을 따라 이어지고, 그 끝자리에 물건리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명부터 예사롭지 않다.
‘물건(勿巾)’은 마을 뒷산 모양이 ‘물(勿)’자를 닮았고 ‘건(巾)’처럼 볼록한 뒷산에서 마을 한가운데로 시냇물이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건방조어부림이 병풍처럼 마을 전체를 에두르고 있다. 초승달 모양을 한 방풍림은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된 마을의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다. 거칠고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防風林) 구실을 하는가하면, 파도에 의한 해일이나 염해조수를 막아주는 방조림(防潮林) 기능도 한다. 특히 숲 그늘이 물고기들을 끌어 들인다하여 어부림(魚付林)이라 붙였다.
길이 1.5㎞의 해안을 끼고 30m폭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물건방조어부림에는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 등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100여 종에 1만여 그루가 빼곡이 들어서 있어 나무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팝나무 노거목은 마을에서 서낭당나무로 지정하여 음력 10월 보름이면 평안을 비는 동제(洞祭)를 올린다.

몽돌해변의 동글동글한 돌을 들치면 바다다슬기가 지천이다.
이 숲은 전주 이씨 무림군(茂林君)의 후손이 이곳에 정착해 방풍림을 조성했다고 전해져 온다. 19세기 말 숲의 일부를 베어 폭풍을 만나 피해를 입은 뒤 오늘까지도 ‘이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을 믿고 마을 사람들이 한 가지의 나무도 함부로 베는 일 없이 숲을 지켜왔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숲 보호는 지금까지 이어져 지난 5월 국가지정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자연생태우수마을은 전국에 모두 6개 마을뿐이다. 또 아름다운 숲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여행객과 강태공들이 찾아드는 것도 숲의 영향이다. 방풍림을 따라 활처럼 휘어진 몽돌해변의 동글동글한 돌을 들치면 다슬기가 지천이다.
물건방조어부림 마을 뒤편 산 중턱에는 유럽풍의 건물이 이국적인 독일마을이다. 50년대 광부와 간호사로 머나먼 이국 땅 독일로 건너간 조국 근대화의 주역이었던 독일 거주 동포들이 고국에 돌아와 둥지를 틀었다. 등대너머로 솟아오르는 해오름의 풍광은 가슴 벅찬 보너스다. 〈이규섭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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