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5 격주간 제640호>
<이규섭의 생태기행> 강물 범람 막은 최초의 인공림

‘천년의 숲’ 함양상림

올 가을은 유난히 짧아 ‘잊혀진 계절’이 되었다. 평균 70일이던 가을이 올해는 겨우 30일이었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입동과 함께 기온이 곤두박질치고 첫눈까지 내려 여름에서 겨울로 바로 건너 뛴 느낌이다. 가을 가뭄과 늦더위로 나무들이 푸른색을 띠고 있거나 단풍이 들기도 전에 말라버렸다. 지구의 온난화로 갈수록 봄가을이 짧아져 생태계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지리산과 덕유산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경남 ‘함양상림(咸陽上林)’엔 낙엽이불이 융단처럼 푹신하게 쌓여있다. 낙엽의 촉감은 솜이불처럼 부드럽고 포근하다. 들숨과 날숨 따라 구수하고 상큼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함양상림은 1100여 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천령군(지금의 함양군) 태수를 지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이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이다. 낙동강의 지류이자 남강의 본류인 위천(渭川)의 범람을 막기 위해 둑을 쌓아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꾼 호안림(護岸林)으로 1962년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이 숲의 원래 이름은 대관림(大館林). 처음 조성할 당시엔 길이가 5㎞쯤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중간의 일부가 없어져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어졌다. 하림엔 민가가 하나 둘 들어서면서 훼손되었고 지금의 상림만 남았다. 상림의 총 면적은 21ha로 숲의 길이는 1.6㎞쯤 된다.
80~200m 폭의 강둑에는 갈참나무, 노간주나무, 생강나무, 백동백나무, 비목나무, 개암나무, 물오리나무를 비롯하여 활엽수, 낙엽관목, 상록수 등 모두 100여 종 3000여 그루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청이 1993년 조사에서 116종류의 식물,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천년의 숲에는 갈참나무·졸참나무 등이 비교적 우람하게 버티고 있을 뿐, 1100년 전에 조성된 숲치고는 큰 나무들을 찾아볼 수 없다. 고목은 죽고 죽은 나무가 뿌린 씨가 다시 땅에 떨어져 태어난 나무들이 대를 이어가고 있는 탓일 게다.

<‘천년의 숲’ 함양상림에 낙엽이 쌓여 솜이불처럼 푹신하다> <상사화와 닮은 꽃무릇은 10월까지 꽃을 피운다>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제가끔 서 있더군/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숲이었어…’ 정희성의 시 ‘숲’을 떠올리며 상림 숲을 걷다보면 이은리 석불(유형문화재 제32호), 함화루(유형문화재 제258호), 척화비(문화재자료 제264호)와 사운정, 초선정 등 정자와 만세기념비, 독립투사들의 기념비와 동상 등이 즐비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최치원의 신도비(문화재 자료 제75호)로 ‘건학사루수식림목어장제(建學士樓手植林木於長堤)’라 씌어져 있다. 가야산의 나무를 옮겨 하루 만에 심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산책로 주변에는 물레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 등을 최근에 조성해 놓았고, 인공 연못에 심은 다양한 연꽃과 수생식물들도 겨울잠 채비를 한다.
신선이 되겠다던 고운 최치원은 청학(靑鶴)되어 승천했는지 죽음조차 확인 할 수 없지만 그가 일군 천년의 숲에 낙엽은 쌓이고, 낙엽은 썩어 나무의 자양분인 부엽토가 되어 천년의 숲을 지탱해왔고, 그렇게 또 천년을 이어 갈 것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함양이지만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뚫려 수도권에서도 승용차로 서너 시간이면 함양에 닿을 수 있다. 함양 터미널에서 상림까지는 도보로 10여분쯤 걸린다. 〈이규섭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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