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5 격주간 제917호>
[이달의착한나들이] 사이좋게 살겠습니다

새해 소원을 매달고 허리를 숙였다.

어렸을 때 엄마는 말했다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결혼할 때도 말했다 사이좋게 살라고. 그러나 유사 이래 개인이나 나라나 싸움이 그치지 않는 걸 보면 그처럼 힘든 일도 없는 듯하다. 우리는 왜 사이좋게 살아야 하나? 극단적인 관계 악화로 불행하게 살다 간 사람은 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와 함께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갔다.
친구는 글짓기 선생님이었다. 그녀의 핸드폰엔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녀는 자랑스러운 듯 4학년 남자아이를 가리켰다.
얼마 전 추운 날이었다고 한다. 수업 도중 그 아이가 씩씩거리며 베란다 문을 열어놓더란다. 그래도 모른 척 수업을 했더니 다른 문까지 다 열어젖히더란다. 그래서 친구가 물었단다. “도경아, 너 힘든 일이 있지?”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사실 어른들은 아이들이 힘든 거 잘 몰라” 그러자 아이가 술술 고백하더란다. “엄마가 핸드폰을 뺏어갔어요. 그래서 공책을 집어던졌더니 방학 동안 핸드폰 압수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눈물을 떨구더란다. “아! 가슴이 답답해 문을 열어놓았구나. 핸드폰이 목숨 줄인데 속상하겠다.” 그러자 슬그머니 일어나 문을 닫더란다. 그날부터 아이는 숙제도 잘하고 선생님 마중까지 나온다고.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사도세자의 능은 혜경궁 홍씨와 합장되어 ‘융릉’이라고 불린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늙어서 낳은 금지옥엽 같은 자식이었다. 그래서 핏덩이를 세자로 봉하고 2살 때부터 제왕교육을 실시한다. 영화를 보면 사도세자가 엄마랑 자고 싶다고 보채다가 손가락을 빨며 잠이 드는 가슴 아픈 장면이 나온다. 사도세자는 총명하고 슬기로웠지만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와 억압으로 사춘기가 되면서 빗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아버지는 끝까지 제왕의 예법과 공부만을 강요하다 아들을 미치게 만들고 뒤주에 가두어 죽이게 된다. 아들은 죽어가면서 부르짖는다. “내가 바란 건 아버지의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공부가 그리 중요합니까? 나는 숨이 막혀 죽습니다.” 영조는 나중에 가슴을 친다. 공부보다 아들이 먼저였던 것이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기 전, 아버지를 죽이려고 찾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어린 아들과 영조의 대화를 듣게 된다. 사도세자가 어머니인 후궁 영빈의 회갑을 맞아 아들에게 사배를 올리게 한 일에 대해 영조가 묻고 있었다. “영빈의 회갑 날 너도 사배를 했다고 하는데 왕도 아닌 후궁에게 어찌 사배를 할 수 있느냐?” “저는 할바마마가 왕이 아니더라도 천배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것이 옵니다. 공자도 예법의 말단을 보지 말고 그 마음을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날 아버지의 마음을 보았나이다.” 그 말에 사도세자는 칼을 떨구고 울고 만다. 마음을 보아주는 이가 세상에 하나만 있어도 목숨을 건지게 되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수원 화성행궁에 들렀다. 그 행궁은 정조가 지은 행궁으로 사도세자 능에 제를 지낸 후 머물던 곳이다. 행궁 마당엔 600년 된 나무가 있었고 쪽지가 매달려 있었다. 나도 소원을 매달고 허리를 숙였다. ‘사이좋게 살겠습니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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