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5 격주간 제903호>
[이달의착한나들이] 올레길에서 만난 구두

신발은 성자처럼 고요히 앉아있었다.

나는 걷고 싶을 때 제주도로 간다. 푸른 하늘과 바다, 끝없는 돌담이 이어지는 길. 나는 왜 걷는가? 그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확인인 것이다.
제주 올레길 1코스에 들어서자 긴 돌담이 보였다. 이른 아침이라 까만 돌담 위로 분홍 햇살이 내려와 종달새처럼 재재거리고 있었다. 그 눈부심에 고개를 돌리다 발을 멈추었다. 돌담 위에 누군가 벗어놓고 간 등산화 한 켤레! 신발은 아침의 후광 속에 성자처럼 고요히 앉아 있었다. 그는 어디를 어떻게 돌아 여기에 이르렀는지 앞은 해지고 바닥은 찢어져 있었다.
신발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일화를 그린 ‘다른 한 짝(The other pair)’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기차역이 보이고 거지같이 남루한 아이가 슬리퍼를 끌며 화면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카메라는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아이의 얼굴을 비추다가 아래로 내려와 슬리퍼를 비추는 순간 슬리퍼 끈이 끊어진다. 아이는 주저앉아 끈을 이어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허사가 된다. 몇 번이고 슬리퍼를 발에 꿰어보지만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아이! 아이는 슬픈 눈으로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러다 한순간 아이의 눈이 번쩍 빛난다. 자기 또래의 소년이 신고 가는 구두를 본 것이다. 그 구두는 반짝반짝 빛나는 가죽 구두였다. 아이의 눈은 자석에 끌리듯 구두를 따라간다.
구두를 신은 소년은 길을 가다가도 수건을 꺼내 구두를 닦고 아빠랑 의자에 앉아서도 구두를 닦는다. 소년의 구두가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되고 아이는 꿈을 꾸듯 몽롱한 눈으로 하염없이 구두를 바라본다. 그때 기차가 들어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향해 달려가고 소년과 아빠도 그 틈에 섞인다. 아우성치던 사람들이 모두 기차에 오르고 나서야 아이는 보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구두 한 짝과 기차에 매달려 있는 소년을.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이는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구두를 집어 들고 달리기 시작한다. 숨을 헐떡이며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아이! 그러나 기차는 점점 멀어지고 아이는 기차에 매달린 소년을 향해 힘껏 구두를 던진다. 그러나 구두는 허공을 날아 바닥에 떨어진다. 순간 기차에 있던 소년은 신고 있던 구두 한 짝을 벗어 맨발의 아이를 향해 던져준다.
5월 19일, 미국 애틀랜타주(州)에 있는 사립대 모어하우스 칼리지 졸업식에서 흑인 억만장자가 축사를 하던 도중 졸업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아주겠다고 선언한다. 졸업생은 430여 명으로 대출금은 한화로 약 477억 원! 학생들은 처음엔 영문을 몰랐지만 이내 환호성을 지르며 눈물을 흘린다. 한 명당 대출금은 일억 원 정도였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기 위해선 신발이 필요하다. 기차를 탄 소년이 던져준 구두는 가난한 아이의 빛나는 걸음이 되었을 것이다. 억만장자의 학자금도 험난한 사회로 나가는 학생들의 튼튼한 신발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나는 제주에서 만난 구두 앞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그녀도 내가 신고 온 오래되고 낡은 구두였던 것이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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