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5 격주간 제925호>
[이달의착한나들이] 생각의 길 끝에는
이름표를 단 텃밭.

서울 광진구 광장초등학교를 돌아 왼편으로 오르다 보면 시골 냄새 물씬 풍기는 산자락에 주말농장이 있다. 그곳엔 탁자와 원두막이 있어 산책하면서 머리를 식히기에 더없이 좋다. 연휴 동안 집에서 빈둥거리다 포슬포슬하게 갈아엎어 놓았던 텃밭이 궁금해 전철을 탔다.
그곳의 풍경은 활기차게 변해있었다. ‘자투리 농장’이란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텃밭엔 갓 심은 고추나 상추 등이 자라고 있었다. 좀 늦은 시간이라 주변은 한산했고 텃밭마다 세워진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이름만 보아도 주인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웃음이 났다.
백만장자, 도시 농부, 꿈꾸는 농원, 민주네 야채가게, 파란집, 새희망&새출발, 커피한잔, 야채바구니, 네가 좋아, 불사초 등의 이름들 사이에 ‘키워서 잡아먹자’란 이름이 보였다. 순간 웃음이 사라졌다. 상추가 자신의 이름표를 빤히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사초’란 이름과는 너무나 상반되지 않는가? 똑같은 텃밭이지만 사람의 생각이란 얼마나 다른가!
2019년 3월의 일이다. 중국 산둥성에 사는 탕샤오룽이란 남자가 길에서 지갑을 주웠다. 지갑 안엔 340만원이 들어있었다. 당시 그의 아들은 혈구탐식증후근이란 희귀병으로 골수이식이 시급했지만 돈이 없어 수술을 미루고 있을 때였다. 그는 아들이 떠올랐지만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지갑을 돌려준다. 지갑 주인은 딩이룽이란 농장 주인으로 탕샤오룽에게 사례금을 건넸지만 그는 당연한 일이라며 받지 않았다. 그 후 그의 아들이 병으로 죽어간다는 걸 알게 된 농장 주인은 전 재산이었던 20만 킬로그램의 무를 내놓는다. 그러나 그 많은 무를 당장 어디다 팔 것인가? 이 절박한 사연을 듣고 무를 전부 사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중국 다롄의 기업가 주잔원씨! 무 판돈 5,100만원으로 아들은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주잔원씨는 완쾌할 때까지의 비용도 부담하기로 했다. 처음 주운 돈 340만원이 5,100만원이 되고 아들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 이런 기적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탕샤오룽이란 사람의 생각이 불러온 결과였다. 그는 주인에게 지갑을 돌려주었고 사례금도 받지 않았기에 이 스토리는 저 위의 하늘나라처럼 이 땅을 행복한 곳으로 만들었다.
텃밭을 둘러보다 쉬고 싶어 나무 탁자로 갔다.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아저씨가 자리를 양보하며 손가락으로 탁자 귀퉁이를 가리켰다. 그곳엔 소복이 쌓아놓은 곡식가루 같은 것이 있었다. “이건 새 먹이예요.” 그는 내가 그것을 쓸어버릴까 봐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그는 언제부터 배고픈 새를 생각하며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길엔 푸른 숲이 우거지고 재재거리는 새소리가 울창했다.
우리는 매일 생각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생각에도 길이 있다. 갈래 길에선 방향을 정해야 하고 길이 아닐 때는 유턴을 하기도 한다. 어떤 생각은 기적을 불러오고 어떤 생각은 낭떠러지 끝에 서게 한다.
나는 오늘도 생각의 길을 따라 걸어간다. 내 생각의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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