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5 격주간 제913호>
S4-H 청소년 미국파견 체험기
강치영 교사 (제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뚝 떨어진 아침 기온, 오늘이 입동이란다. 등굣길 교정에 후드득 쌓이는 느티나무 낙엽들이 마지막 수능정리를 하는 수험생들의 마음을 닮았다. 그들을 위하여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고, 후배들이 빼곡하게 쓴 응원 메시지를 매단 나무들도 화려하게 겨울 정원에 세워 두었다. 온통 ‘수능대박’을 품은 학교 정원은 올해도 여느 해와 같이 긴장감으로 1교시가 시작되기도 전에 살얼음이 내린다.
보충수업으로 채워졌던 여름방학을 2019 S4-H 청소년 미국 파견의 인솔교사로 갈 수 있었던 기회는 그 자체로 대박이었다. ‘한 달 제주 살아보기’처럼 ‘한 달 S4-H 국제교환프로그램 체험’의 느낌은 ‘어항 속 붕어의 대서양 생존 수영 도전기’라고나 할까? 일종의 값진 힐링이면서 가장 배움이 많았던 직무연수라고 생각한다.
미시건주의 힐즈데일과 스프링 아버에서 인솔지도자로서의 나의 역할은 온갖 낯섦과의 만남이었다. 중학교 1학년에서 고3 학생까지 이루어진 9명의 한국 대표단은 미시건주의 남부에서 5대호의 북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흩어져 한 달을 보냈다. 편리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만 했던 생경함은 대학생이 되어서 꼭 한 번 더 방문하겠다는 새로운 비전으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한국4-H의 대표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경험을 하고, 문화 충격과 소소한 실수가 동반되는 하루하루를 자신만의 언어로 소통해보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해 가는 시간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꼭 오고 싶다는 학생들의 소감문 속에서 언급되지 않은 아쉬움과 설렘을 보았다. S4-H 홈스테이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좀 더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살아갈 젊은이들을 보았다. 아마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한 기억으로 존재하리라….
인솔지도자는 운전이 금지된 탓에 그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휠씬 단조로웠다. 덕분에 자연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산책을 즐기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었다. 새로움이 주는 즐거움들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을 든다면,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초청 학생의 좋은 경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홈스테이 가족들이다. 가족 중심의 미국문화는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지에서의 호스트 가족은 영화 속의 미국 가정과는 많이 달랐다. 생활 속에서 4-H를 표현하고자 하였고 한국의 4-H역사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며 관심을 보였다. 지역사회의 문화 활동뿐만 아니라 회원들과 모임을 갖고 자주 소통하는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자녀의 교육을 위한 가정교육과 교육 프로그램에 한국보다 휠씬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한국어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우리 학생들이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하여 매우 노력하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대체로 좋은 경험을 위하여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매사에 섬세하게 계획하여 활동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배려심을 종종 느낄 수 있었다.
둘째, 공동체 모두가 4-H활동을 하며 4-H활동에 친화적인 모습이다. 한국 학생들이 미시건에 와서 처음으로 느낀 것은 지평선 없이 펼쳐진 툭 트인 하늘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게다가 너른 앞마당, 뒷마당, 옆마당에 고추, 토마토, 호박을 심고 사과나무, 배나무, 버찌나무를 키운다. 게다가 한껏 멋을 부린 정원에다 성조기를 꽂고 환영한다는 팻말을 달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조각상을 세워두고 누군가는 기도를 하는 인형을 연출하는 사람들의 여유가 부러웠다. 웬만한 원예도구는 정원 옆에 언제나 비치되어 있는 모습, 그리고 틈만 나면 자연을 음미하는 의자와 벤치 그리고 바비큐 화덕들이 전원생활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지역 4-H를 자랑스럽게 설명해주고 행사를 홍보하며 한국의 4-H를 응원해주는 건강한 미시건주 시민들이 부러웠다. 4-H 페어 및 미시건 대학의 4-H프로그램은 미래의 글로벌 리더십 배양을 위하여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초청할 야심찬 계획도 부러웠다.
셋째, 5대 호수 전원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자연환경이다. 다람쥐의 놀이터인 호두나무가 우리나라의 감나무처럼 뒷마당에서 자라고 로빈 새가 새벽을 깨우는 통나무집들이 들어선 마을. 혼자 요트를 타고 나간 송어 낚시는 한적하다 못해 외로움만 낚을 것 같은 넓고 작은 호수가 흔한 미시건. Petoskey 돌은 보석으로 팔린다고 한다. 아마 입동인 오늘은 미시건에 첫 눈이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겨울이 빨리 찾아오고 영하의 날씨와 내린 눈으로 집안에 고립된 채로 겨우살이를 한다던데…. 크리스마스 트리에 내린 눈처럼 멋진 설경을 창밖으로 즐기며 커피 한 잔과 독서, 그리고 장작 불꽃을 피운 화로에서 사과 꽃향기가 진동하는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대화를 하며 긴 겨울을 보낸다는데….
문득 상상 속의 미시건의 겨울도 무척 그리워진다. 겨울방학이 되면 주소록을 펼쳐들고 진한 손글씨의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어야겠다. 나도 그들을 초대하고 싶다. 언제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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