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5 격주간 제913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돈독(敦篤)’과 ‘허정(虛靜)’
"정이 돈독하고 마음이 고요한 것, 그것이 인(仁)의 근본이다
敦篤虛靜者 仁之本也(돈독허정자 인지본야)"
 - 《근사록(近思錄)》 중에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앞 유리창이 가려진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앞 유리창이 가려진 자동차는 어떻게 운전해야 하는가.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를 통해 이제까지 지나온 길을 파악하여 앞길을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속도를 줄이는 지혜도 필요하다. ‘자동차 운전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은 액셀러레이터보다 브레이크를 잘 다뤄야 한다’는 충고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가(儒家)에서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가속(加速)이 아니라 멈춤을 강조할 때가 있다. 《주역(周易)》에 나오는 ‘간(艮) 괘’가 바로 그러한 충고를 담고 있다. ‘간(艮) 괘’는 한계를 맞이하거나 정지함을 뜻한다. 앞에도 큰 산이 있고 뒤에도 큰 산이 있다. 그러므로 멈출 수밖에 없다. 억지로 움직이려 하면 오히려 해로움이 있을 뿐이다. 숨을 고르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다.
계절로 말하면 겨울과 봄 사이다. 겨울도 큰 산이고 봄도 큰 산이다. 하나의 계절이 끝남과 동시에 새로운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 선배 학자들은 ‘조용히 멈추어라’라고 충고한다.
“정이 돈독하고 마음이 고요한 것, 그것이 바로 인(仁)의 근본이다(敦篤虛靜者 仁之本也).” 송나라의 학자 장재(張載)가 ‘간(艮) 괘’를 풀이한 말이다. 키워드는 ‘돈독(敦篤)’과 ‘허정(虛靜)’이다.
‘돈독(敦篤)’은 ‘서로의 관계에 사랑이나 인정이 많고 깊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돈(敦)’은 이웃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기 위해 양고기를 삶는 모습을 그린 글자다. 자신이 먹을 게 아니라 이웃들과 함께 먹으려 함이기 때문에 개인적 욕심을 배제함을 의미한다. ‘독(篤)’은 말(馬)이 달리지 않고 걷는 모습을 표현한 글자다. 달리는 말이 아니라 천천히 걷는 말을 뜻한다. 천천히 걷는 말의 말발굽 소리는 대나무밭(竹)에서 나는 소리처럼 부드럽다고 하여 말(馬)과 대나무(竹)를 합하여 ‘독(篤)’이란 글자를 만든 것이다.
‘허정(虛靜)’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조용한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허(虛)’는 호랑이(虎)와 언덕(丘)이 결합한 모습이다. 언덕에 호랑이가 나타났으니 모두 깜짝 놀라 도망간 상태다. 그러니 텅 비어 있다. ‘정(靜)’은 생생함과 푸르름을 뜻하는 청(靑)이 다툼을 뜻하는 쟁(爭)과 결합한 모습이다. 지저분하고 치열한 싸움이 끝난 이후의 소강상태를 뜻한다. 소란 이후이기에 더욱 고요하게 느껴지는 상태다.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싸움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싸움의 끝이 상대를 모두 죽이는 것에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 이웃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기 위해 양고기를 삶는 것처럼, 상대를 설득하여 함께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옳은 방향이라 하더라도 미친 듯이 달려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멈추어 숨을 가다듬어야 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처럼,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면 조용한 시기로 옮겨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호랑이의 무서움을 알고 모두 숨었는데, 숨어 있는 그들을 찾아내어 위협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다독여 안정을 찾을 때가 온 것이다.
그러므로 한계를 맞이하거나 정지함을 뜻하는 ‘간(艮) 괘’는 부정적인 의미만을 지녔다고 할 수 없다. 숨을 고르고 갈 때를 알고 무리하지 않는 지혜를 강조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겨울은 ‘간(艮) 괘’의 지혜를 생각하며 조용히 숨을 고르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돈독(敦篤)’과 ‘허정(虛靜)’을 실천해보자.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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