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5 격주간 제909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현상만 보지 말고 본질을 보라
"마른 돼지가 날뛰는구나!
羸豕孚(이시부척촉)"
 - 《주역(周易)》 중에서


중국 송나라의 학자 주희는 유학(儒學)에 새로운 철학적 사상을 추가하여 신유학(新儒學)의 기틀을 세운 사람이다. 그가 1191년, 승상(丞相)의 자리에 있는 유정(留正)에게 보내는 편지를 살펴보면 젊은 학자의 패기가 아니라 너무나도 노련하고 능숙한 식견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주희의 나이는 62세였다. 그가 1200년에 생을 마쳤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의 사상이 가장 농익었을 때 쓴 편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희가 생각하는 바른 정치(政治)가 무엇인지 그가 쓴 편지를 통해 살펴보자.
“무조건 공을 세우려고 하거나, 무조건 효과를 보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묵묵히 바른 길을 가면 그것이 쌓여 결국 큰 공이 되고, 그것이 쌓여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길을 가는 것은 공을 세우는 것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바른 길을 가는 것의 결과는 사람의 머리로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바른 길을 가려고 노력하라고 당부한다. 바른 길을 가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는 뜻이다.
“무리를 짓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무리를 지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무리 속에 옳지 않은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우리 무리에 속해 있는 사람이니 옳다’라고 판단하여 나아가는 게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올바른 사람이 있더라도 ‘다른 무리에 속해 있는 사람이니 바르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판단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당파싸움은 송나라에서도 다반사로 이루어지던 일이었다. 무리를 짓는다는 것은 당을 만드는 일이며 그러한 것은 당파싸움을 불러오기 때문에 당시에는 무리를 짓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희는 무리를 짓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먼저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옳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기 위해 무리를 이루지 않으면 이미 무리를 이룬 옳지 않은 사람들에게 당하게 된다는 것이 주희의 생각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음(陰)과 양(陽)의 조화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을 가득 채웠던 강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그라질 때가 되면 사그라지는 것이며, 아무리 작은 기운이라 하더라도 그 싹이 자라나면 마침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주인이 되었다가 다시 손님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역(周易)》을 보면 ‘비썩 마른 돼지 한 마리라 하더라도 그것이 날뛰기 시작하면 그를 감당하기 어렵다(羸豕孚)’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찌 바르지 않은 사람들이 몇 안 된다고 방심하며 그들을 내쫓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입니까.”
당시 승상의 자리에 있던 유정(留正)은 기계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주희는 그러한 유정에게 ‘기계적 중립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판단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어떠합니까. 무엇이 자라나서 세상의 주인이 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무엇이 점점 사그라져 힘을 잃고 있습니까. 바르지 않은 사람들이 지닌 힘이 아무리 미약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면 마침내 그 기운이 크게 자라나 나중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바르지 않은 사람들이 힘을 얻어 세상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리를 짓는 것은 잘못이다’라는 말씀만 하시며 그냥 내버려두고 있으시니 답답할 뿐입니다.”
800년 전, 노학자의 편지를 읽으며 오늘날 우리를 돌아보자.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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