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1 격주간 제906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싸울 것인가 피할 것인가

"싸우기도 전에 패배하는 것입니다
未戰而已敗也(미전이이패야)"
- ‘임오응조봉사(壬午應詔封事)’ 중에서


중국은 당(唐)나라가 멸망한 후 극심한 혼란기를 겪게 된다. 혼란기를 마감한 나라가 송(宋)나라다. 송나라는 유가(儒家)의 학문을 새롭게 부흥시키는 등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약화되어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와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에게 많은 영토를 빼앗겨 그 세력이 많이 위축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바로 효종(孝宗)이었다. 당시 33세의 젊은 학자였던 주희(朱熹)는 효종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데 이를 가리켜 ‘임오응조봉사(壬午應詔封事)’라고 한다.
당시 송나라는 금나라와 싸워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을 것인지 아니면 평화협정을 맺어 현재의 상황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찬반양론이 들끓고 있었다. 주희가 효종에게 올린 편지를 살펴보자.
“미래를 대비하는 확실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며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떠합니까. 오랑캐들과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나라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금나라 오랑캐가 누구입니까. 우리에게 치욕을 안겨준 원수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들과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맺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물론 평화협정을 맺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름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힘이 약하여 실제적으로 그들을 물리칠만한 힘이 모자라다. 그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싸우자고 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므로 고개를 숙여 일단 싸움을 피하고, 서서히 우리의 힘을 키워 미래를 기약하는 게 좋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자고 말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이 이익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랑캐와의 굴욕적인 평화협정이 이익을 가져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가져오는 이익보다 그것이 가져오는 피해가 더 큽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그런 전제 하에 이런저런 변명을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물러서서 시간을 끈다고 우리가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입니다.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지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을 위해 지금 물러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자체가 이미 우리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의지가 약해진 상황에서 시간이 흐르면 의지가 강해질까요? 아닙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지는 더더욱 약해질 뿐입니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평화협정을 맺자는 게 아니라 평화협정을 맺자고 생각하기 때문에 약해지는 것입니다. 만약 이대로 평화협정을 맺어버리면 우리는 갈수록 더욱 약해질 것입니다. 결국 평화롭게 해결하자고 하는 것은 오랑캐를 위한 것이지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랑캐를 위한 대책을 내놓는 사람이 충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의 비굴함이 오랑캐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오랑캐들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충신이 아닙니다. 적들은 공격해오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벌써 후퇴하고 있습니다. 싸우기도 전에 진 것입니다(未戰而已敗也).”
젊은 학자 주희의 글을 보며 오늘날 우리의 상황을 살펴보자.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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