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1 격주간 제902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형식과 내용

"꼿꼿함이 예(禮)에 맞지 않으면 꼬이게 된다
直而無禮則絞(직이무례즉교)"
- 《논어(論語)》 중에서


유가(儒家)의 가르침은 언제나 조화로움을 강조한다. 형식과 내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드러내는 형식이 올바르지 않다면 빛이 바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드러내는 형식이 바르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거나 옳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형식과 내용이 서로 다툰다거나 한쪽을 억압하거나 이끄는 것도 아니다. 모자란 형식을 내용이 채워주기도 하고 부족한 내용을 형식이 보완해주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손함이 중요하더라도 그 공손함이 예(禮)에 맞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지고(恭而無禮則勞), 조심스러움이 예에 맞지 않으면 두려워 벌벌 떠는 꼴이 되며(愼而無禮則), 용감함이 예에 맞지 않으면 난폭함이 되고(勇而無禮則亂), 꼿꼿함이 예에 맞지 않으면 꼬이게 된다(直而無禮則絞).”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예(禮)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는 상황에 맞도록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속에 지니고 있는 마음을 겉으로 드러낼 때 가장 적절한 방식을 취하라는 뜻이다. 적절히 드러내고 적절히 감추는 지혜로운 처신이 바로 예(禮)에 맞는 것이 된다. 공손함, 조심스러움, 용감함, 꼿꼿함(강직함) 등은 모두 매우 긍정적이며 중요한 것이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히 드러내지 않으면 본래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에 대한 유가의 가르침은 시(詩)에 대한 생각을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자가 시(詩)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은 매우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공자가 자신의 아들에게 했다는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말하는 법을 모르는 것과 같다(不學詩 無以言)”는 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詩)의 기본이 무엇인가. 드러내되 다 드러내는 게 아니라 적절히 감추는 것이 기본이다. 다 보여주면 예술적 감흥이 사라지고 너무 감추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려워진다.
《시경(詩經)》의 판본 중 하나인 《모시전(毛詩傳)》의 머리말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시(詩)란 무엇인가. 시는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의 움직임이다. 마음 속에 있으면 생각이 되고(在心爲志) 그것이 밖으로 표현되면 시(詩)가 된다(發言爲詩).”
시(詩)는 공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내용과 형식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아주 정확하게 알려준다.
“내용이 형식을 억누르면 촌스러워지고(質勝文則野), 형식이 내용을 억누르면 겉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어진다(文勝質則史). 그러므로 형식과 내용을 적절히 조화롭게 만들 수 있어야(文質彬彬) 군자라고 할 수 있다(然後君子).”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이러한 생각을 흔히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고 말한다. ‘문(文)’이라고 하면 흔히 ‘글’을 떠올리지만 그것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형식’이다. 마음 속의 생각이 ‘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質)은 내용을 의미한다. ‘빈(彬)’은 반짝이며 빛나는 것을 뜻한다. 문(文)과 질(質)이 모두 적당하여 균형 있고 조화로운 상태를 ‘문질빈빈’이라고 한다. 문(文)과 질(質)이 알맞게 섞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지 반성해보자. 뜻은 좋았으나 그 표현이 거칠지는 않았는지,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지만 말 속에 칼이 숨어 있지는 않았는지, 막말을 하면서도 솔직했기에 면죄부를 달라고 하지는 않았는지 깊게 생각해보자. 군자(君子)는 시인(詩人)이라는 공자의 말을 잊지 말자.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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