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5 격주간 제893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복은 스스로 쌓아가는 것이다

“잘 나갈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
聖人爲戒 必於方盛之時(성인위계 필어방성지시)
- 《근사록(近思錄)》 중에서

올바르게 살겠다고 마음을 먹고 겸손한 자세로 하루하루 계속 올바름을 실천해 나아가면 저절로 복(福)이 쌓이게 된다. 복은 완벽한 형태로 모양을 갖춰 나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 먼지처럼 사소하게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쌓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쌓은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얻는 경우도 생긴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 받았다’라고 말하지만, 선배 학자들은 복이 아니라 오히려 흉한 징조라고 충고해준다.
《주역(周易)》에 나오는 예(豫)괘는 기쁘고 즐거운 때를 뜻한다. 그러나 즐거움에 빠져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면 오히려 나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해주는 괘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편안하고 즐거운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안주하여 오래 머물면 반드시 나쁜 일을 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위태롭게 되거나 결국 망하게 되는 이유의 대부분은 즐거움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종은 당 고종의 부인이며 자신의 조모였던 측전무후 이후의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을 평정하고, 5대 황제 예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등극했다. 그는 요숭(姚嵩), 한휴(韓休), 송경(宋璟) 등 현명한 재상들을 등용하고 그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환관과 인척의 정치 참여를 막았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정치를 안정시켰다. 농업생산력이 증대되어 사람들이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경제적 풍요는 군사력의 증강에도 도움을 주어 외세가 넘보지 못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외국과의 교류를 활발히 함으로써 당나라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또한, 이백, 두보, 왕유 등 유수한 작가들이 배출되는 등 문화적으로도 번성한 시기를 만들었다.
현종이 다스린 시기는 당나라 시절 여러 황제들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인 45년에 이른다. 전반기인 713년부터 741년까지의 연호는 개원(開元)이었고 742년부터 756년까지의 연호는 천보(天寶)였다.
713년부터 741년까지의 시기를 ‘개원(開元)의 치(治)’라고 말하는데, 태평성대를 이루어 나라를 잘 다스렸다는 칭송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현종이 몸을 아끼지 않고 일에 매달리자 주위에서 ‘너무 야위었다’라며 걱정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걱정을 들은 현종은 “나는 야위었지만 그 대신 백성들이 살찌고 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현종은 최선을 다해 애민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이어진 천보(天寶) 시대에는 상황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나라가 안정을 찾고 나날이 강성함을 더해가자 처음의 긴장은 사라지고 마음을 놓는 지경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직언하는 신하들을 멀리하고 아첨하며 순종하는 신하들을 중용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양귀비가 출현한 것도 이 시기이며 현종은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스스로 최고의 전성기라고 생각하는 때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聖人爲戒 必於方盛之時). 아무 문제도 없이 모든 것이 잘 될 때, 그것에 만족하여 편안하게 지내고 마음을 놓고 있으면 교만해지기 쉽다. 겸손함을 잃고 사치에 빠지고, 즐거운 마음에 여유롭게 있다 보면 질서가 무너지고 조심하는 마음이 사라져 오히려 화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어려움이 코앞에 닥쳐와도 이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을 놓고 있다가 큰 화를 당하게 된다.”
송나라의 학자 정이(程)의 말이다. 《명심보감》에서도 비슷한 대목을 만날 수 있다. “편안하고 즐거울 때 더욱 조심하라. 병에 걸린 후에 약을 먹는 것 보다는 병이 생기기 전에 스스로 조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복을 쌓는 첫걸음은 조심하는 것이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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