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5 격주간 제885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말을 해야 할 때와 침묵할 때

“할 말이 없으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
無可說 便不得不說(무가열 편부득불열)
- 《근사록(近思錄)》 중에서


말을 조심하라는 충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일반적으로 퍼져있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라는 말은 영국의 역사가이자 비평가인 토머스 칼라일(1795~1881)의 것이다. 토머스 칼라일은 형식을 거부하고 도덕성을 추구한 인물로 그의 사상은 유가(儒家)의 그것과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었다. 도덕적으로 뛰어난 영웅이 사회적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영웅(英雄)’에 대한 집착은 유가의 ‘성인(聖人)’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침묵은 금이다’라는 그의 말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생각해야 할 여지가 있다. 단순히 ‘입을 다물어라’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히 인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을 더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닐까. 그는 자신의 저서 《프랑스 혁명》을 통해 ‘혁명은 지배계급의 악정(惡政)에 대한 천벌’이라 역설하기도 했다. 결국 칼라일이 말하는 침묵은 군더더기를 붙이지 말라는 것이지 처음부터 침묵하라는 게 아니다.
《근사록(近思錄)》을 보면 송나라의 학자 정호(程顥)가 자신의 제자로 있던 형칠(邢七)을 꾸짖는 대목이 나온다.
“형칠(邢七)이 ‘저는 하루에 세 번씩 스스로를 반성합니다(三點檢)’라고 말하자 정호는 ‘참으로 딱하구나. 그렇다면 그 나머지 시간에는 무엇을 하느냐?’라고 말하며 형칠에게 핀잔을 주었다. 형칠이 진심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증자가 이야기한 ‘나는 날마다 세 가지에 대해 반성한다(三省). 사람을 대할 때 진심으로 대했는가? 친구와의 신의를 지켰는가? 성실하게 공부했는가?’라는 말을 비슷하게 흉내 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를 정호가 꾸짖자 형칠은 ‘특별히 할 말이 없어서 그랬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명도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특별히 할 말이 없으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無可說 便不得不說)’”
형칠은 말을 잘하고 윗사람에게 호감을 사는 것에 능해 일찍 벼슬길에 나아가 이름을 높였지만 여기저기 권력자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아부를 일삼다가 지조가 없는 사람의 대명사로 낙인이 찍힌 인물로 유명하다.
“나를 과시하는 말을 하지 말라. 남을 헐뜯는 말을 하지 말라. 진실이 아닌 말을 하지 말라. 바르지 못한 말을 하지 말라.”
조선 후기의 학자인 윤휴(尹 ; 1617~1680)의 말이다. 진실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나를 내세우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군더더기일 뿐이다. 남을 헐뜯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가 올바르지 않은 일을 했다면 그 일의 잘못됨을 논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내세워야지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군더더기다. 진실을 왜곡하고, 흔히 말하는 ‘가짜 뉴스’를 근거로 삼아 무엇인가를 주장하는 것도 잘못이다. 이 모두가 군더더기이자 바르지 못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예 입을 닫고 있으면 최소한 잘못은 저지르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런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는 이렇게 말한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돼 있다.” 송나라의 학자 정호도 이렇게 충고해준다. “반드시 말을 해야 할 경우라면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확실하게 말을 해야 한다. 만약 그 말 때문에 나를 비롯하여 누군가의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가 생긴다 하더라도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침묵이 금’이라는 말은 군더더기 같은 말, 잘못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작은 정성, 위대한 첫걸음! - 4-H교육활동 후원하기
다음기사   완주 들판에 울려 퍼진 4-H 젊은 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