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5 격주간 제883호>
[이달의착한나들이] 목포에서 만난 파랑새
-  전남 목포  -

골목 끝에서 나를 기다려준 파랑새.

사할린 여행을 계획한 건 작년부터였다. 동호인들의 사할린 탐방! 식민지 시대 그곳으로 끌려갔던 수많은 동포들이 전쟁이 끝나서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곳! 책임을 져야 할 일본은 식민지 지배와 전쟁 책임 회피를 위해, 소련은 국제정치적 역학 관계와 노동력 보충이라는 현실적 요구에 따라, 조국은 반공 체제의 유지를 위해 그들을 버렸다. 내가 만약 그들이었다면?
나는 새삼 이산의 고통을 느끼며 한인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고 환전도 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러나 나는 사할린을 가지 못했다. 출발 전날에서야 무언가 크게 잘못된 걸 알았다. 단체 항공권 구입이 개인 구입으로 변경 된 공지를 내가 보지 못한 것이다. 표가 없으니 어찌 갈 것인가? 참으로 기막히고 막막한 일이었다. 어쩌면 사할린의 한인들도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상황은 막다른 골목이었지만 나는 떠나기로 했다. 혼자만의 여행을! 다음날 나는 목포로 떠났다.
우리 엄마는 슬플 때 노래를 불렀다. 설거지할 때 덜그럭거리며 돌아서서 흥얼거리던 ‘목포의 눈물’ 천 마디의 말보다 한 소절 이 노래가 그리워 목포로 갔다. 눈물을 간직한 목포엔 벽화마을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산동네로 밀리고 밀려나 사는 곳. 폭염으로 팔뚝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끝까지 가보기로 한 것은 골목 입구에 희망이라는 글씨가 등대처럼 환했기 때문이다. 길 잃은 배처럼 골목에 들어서니 집들은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나 하나로 꽉 차는 골목길은 구불구불 서러운 노랫가락처럼 언덕배기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지붕 위에 텐트를 친 집, 붉게 녹이 슨 창살이 겨우 붙어있는 집, 벽에 구멍이 난 빈집도 있었다. 그곳은 부자들의 골목과는 달랐다. 내게만 있는 줄 알았던 쓰라린 고통의 상처들이 겹겹이 쌓여 나를 따듯히 감싸주었다. 땀이 흘러내려 눈물이 될 때쯤 나는 골목길 끝에 서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파랑새! 그 새는 이 세상 어떤 새보다 화려했고 고귀했다. 바닥을 친 가난만이 그릴 수 있는 벽화였다. “나예요. 희망의 파랑새. 두리번거리지 마세요. 여기 바로 당신 앞에 있잖아요. 나는 날갯짓도 하지 않아요. 언제나 얌전히 앉아 당신을 기다려요.”
골목을 내려오다 아까는 못 본 풍경을 보았다. 붉은 녹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창살 속에서 나를 보며 미소 짓는 선인장을 발견한 것이다. 그 웃음이 하도 의미심장해 두리번거리다 나도 몰래 배시시 웃고 말았다. 잎사귀 사이로 보이는 글은 <입춘대길>. 그것은 막다른 천장에 씌어 있었다.
골목을 나오니 길은 유달산과 이어져 있었다. 유달산은 땅 끝에 있는 산이다. 갈 데까지 가 땅을 차고 솟아오른 산! 그 산을 오르면 또 다른 길이 보인다. 망망대해 푸른 바닷길! 목포는 항구다. 항구는 여객선을 품고 뱃고동을 울리며 먼 길을 떠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배도 가슴으로 품어준다. 시커멓게 녹이 슬어 형체만 남은 세월호! 그것도 상처 입은 짐승처럼 차가운 바다 밑바닥을 차고 항구 가장자리로 올라와 있었다.
길 끝엔 또 다른 길이 열린다. 사할린 대신 목포를 다녀 온 길, 나는 그곳에서 만난 파랑새를 잊지 못할 것이다.  〈김금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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