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5 격주간 제881호>
[이 한 권의 책] 82년생 김지영
변하지 않는 여성들의 자화상

윤 기 자 지도교사 천안 병천고등학교

「82년생 김지영」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일이 바로 둘째딸 어린이집 사건이었다. 지영씨는 몇 번의 연애사를 거쳐 3년 전에 결혼했고, 딸 하나를 낳아서 육아를 전담하느라 다니던 회사도 퇴직했다. 좋아하던 일이라 퇴사하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매우 컸으나, 아이를 믿고 맡길 데가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도와주겠다고 말하지만 늘 회사일이 바쁜 남편은 밤늦게 퇴근하고 때로 주말에도 회사에 출근한다. 육아는 전적으로 지영씨의 책임이었다. 아이가 3살이 되자 오전에 어린이집에 보내고, 알바를 하려 했으나 그것도 마땅치 않아 집에서만 생활하면서 지영씨는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늘 속상하다. 그런데 누구에게 어떻게 하소연할 수도 없어 속이 답답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진다. 오전에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지원이)를 데리고 모처럼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 1,500원짜리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옆 벤치에서 담소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던 회사원들이 부러워 쳐다보고 있을 때, 그들이 나누던 대화가 간간히 들린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허겁지겁 집에 돌아와서 하루 종일 정신을 놓고, 엄청나게 울고 나서 그녀는 때로 다른 사람으로 완벽하게 변모하는 증세가 생겼다. 친정엄마로, 동아리 선배로. 물론 그녀 자신은 자신이 그렇게 변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렇게 변해서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서 시원하게 이야기한다.
남편에게는 잘 아는 동아리 친구로 변해서 “대현아, 요즘 지영이 많이 힘들 거야. 저 때가 몸은 조금씩 편해지는데 마음이 많이 조급해지는 때거든. 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 자주 말해줘.”
추석날 시댁식구들에게는 친정엄마로 변해서 “사돈어른,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저희 집 삼 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이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 사는 게 다 그렇죠.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주셔야죠.”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지영씨를 상담했던 정신과 의사의 마지막 말을 통해 변하지 않는, 언젠가는 변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도 가질 수 없게 하는 촌철살인의 문장이 나타난다. 같은 의사인 아내가 문제 있는 아들교육 때문에 의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 수학문제만 풀고 있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래서 김지영씨를 이해한다면서도 그는 일 잘하고, 예쁘고, 성격도 싹싹하고, 센스도 있던 여직원이 어렵게 임신해서 병원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이 소설의 훌륭한 점은, 여성의 입장에서는 분노와 울분이 치솟는 성차별의 문제를 정말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조남주 지음/ 민음사 펴냄/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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