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1 격주간 제880호>
[이도환의 고전산책] 외교의 올바른 길

“문제 해결의 열쇠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不在乎外攘 而在乎內修(부재호외양 이재호내수)
-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중에서


신숙주(申叔舟;1417∼1475)는 후대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세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를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이유로 변절자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한다.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死六臣)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실용주의적 학자이자 정치인이며 합리적인 행정가이자 외교관이라는 평가도 있다. 더 나아가 단순히 왕의 핏줄을 보호한다는 좁은 의미의 감성적 명분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와 백성들의 안위와 행복을 위한다는 큰 의미의 명분을 따랐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세종이 계획하고 실행하던 여러 개혁을 마무리한 사람이 세조이며 그러한 개혁이 성공하도록 만든 주인공이 신숙주이기 때문이다.
당시, 단종은 너무 어렸고 권신들 사이에 숨어 있었기에 세종의 개혁을 이어갈 힘이 없었다. 신숙주는 그러한 정치 세력의 전반을 큰 틀에서 살펴, 자신을 총애하고 믿었던 세종의 뜻을 이어가는 길은 단순히 세종의 후손을 따르는 게 아니라 세종이 꿈꾸었던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그가 남긴 책을 통해 그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는 세종이 왕으로 있던 1438년, 젊은 나이인 21세에 과거시험을 통과해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기여한 젊고 능력 있는 학자였다.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의 편찬은 물론 《동국통감》의 편찬을 총괄했고, 《국조오례의》도 개찬했다.
그러나 그의 가장 뛰어난 저서는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동해 바다 건너에 있는 여러 나라들에 관한 기록’이다. 일본을 포함해 대마도와 오키나와 등을 모두 포함한 일본 열도 전체에 대한 정치(政治)·경제(經濟·문화(文化)·군사(軍事)·지리(地理)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신숙주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인문학적 지식과 철학을 총동원하여 외교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집현전 학자 출신이지만 그는 앞뒤가 막힌 서생(書生) 스타일은 아니었다. 26세 때인 1443년에는 세종의 명을 받들어 일본 사행에 동참하여 일본 본토와 대마도를 모두 둘러봤다. 1452년에는 사은사(謝恩使)의 일행으로 중국 명나라를 둘러보고 돌아왔으며 1460년에는 북쪽 여진족을 물리치기 위해 강원도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직접 전투를 지휘해 여진족과의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뛰어난 언어학자였기에 중국어는 물론 일본어와 여진족의 언어까지 능통하여 따로 통역사를 두지 않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러한 모든 경험과 학문을 농축하여 1471년에 저술한 책이 바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였다. 이 책의 서문에서 신숙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외교의 올바른 길(待夷狄之道)은 어디에 있는가. 문제 해결의 열쇠는 밖이 아니라(不在乎外攘) 안에 있다(而在乎內修). 변방의 국경에 있지 않고 나라의 중심에 있다. 군사를 일으켜 전쟁터로 나가는 데에 있지 않고 내부의 개혁을 통해 바른 정치를 하는 데에 있다.”
민심을 잘 반영하여 바른 정치를 펼치면 경제도 좋아지고 나라도 강해진다. 그 힘이 외교에서도 빛을 발하게 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올바른 사람이 된다면 좋은 일이 생기고 명성도 얻게 된다. 사람들이 존경하며 따르게 된다. 신숙주를 통해 오늘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도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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